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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밑이 아닌 지평선을 보고 걸어야 한다"

입력
2024.07.2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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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 다그 함마르셸드- 1

1960년 3월 유엔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다그 함마르셸드 유엔 사무총장. un.org

1960년 3월 유엔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다그 함마르셸드 유엔 사무총장. un.org

1953년 3월 31일, 만 47세의 젊은 스웨덴 정치인 다그 함마르셸드(Dag Hammarskjöld, 1905.7.29~1961.9.18)가 제2대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됐다. 다음 날 자정 직후 잠결에 기자의 전화를 받은 그는 “말도 안 되는 만우절 농담”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 기자는 3차례 거듭 전화를 걸어야 했다.

초대 사무총장이던 노르웨이 정치인 트뤼그베 리가 냉전 초기의 험악한 대립 틈바구니에서 시달리다 “유엔 사무총장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이란 말을 남기고 중도 사임한 직후였다. 미국과 소련은 이념 정치에 휘둘리지 않을 행정가 스타일의 후보를 물색했고 ‘튀지 않는’ 유엔 외교관이던 그를 지목했다. 미국은 “선택 가능한 최선의 인물”로 그를 평가했고 소련 역시 “무해한 인물”로 판단했다. 중국 대표가 불참한 가운데 열린 안보리 비밀 투표에서 그는 만장일치로 선출됐다.

스웨덴 총리를 지낸 정치인의 아들로 스톡홀름대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뒤 재무부와 외무부를 거쳐 유엔 대표단 부의장-의장을 역임한 그는 하지만, 사무총장으로서 예상과 달리 유엔의 위상을 실질적으로 정립하는 데 주력했다. 건국 직후의 이스라엘-아랍권 갈등과 한국전쟁 포로 석방 협상, 1956년 수에즈 위기, 콩고공화국 독립-내전 등 냉전 대리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평화유지군의 전신인 유엔 긴급군(emergency force, 1956)을 창설했다.

“발밑이 아닌 먼 지평선을 바라보는 이들만이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이상주의자는 재임 중 강대국, 특히 소련의 지속적인 사퇴 압력을 견디며 “인류를 낙원으로 인도하는 게 아니라 지옥에서 구하는 게 유엔의 사명”이라는 소신을 지켰다. 그는 콩고 내전 중재를 위해 이동하던 중 로디지아(현 잠비아) 인근에서 의문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숨졌다. 사고 의혹은 아직도 온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계속)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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