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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근본이던 포퓰리즘, 마오쩌둥 문화혁명 때 나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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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숫자로 표현되는 경제학 역시 오랜 역사를 거치며 정립됐습니다. 어려운 경제학을 익숙한 세계사 속 인물, 사건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경제 관료 출신으로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으로 근무하는 조원경 교수가 들려주는 ‘세계사로 읽는 경제’는 2주에 한 번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대중이 이끄는 정부를 지지하는 포퓰리즘(Populism)은 원래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포퓰리즘의 어원은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대중)’에서 나왔다. 이는 민주주의와 관련한 그리스어 '데모스(demos〮민중)'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통 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 동원 양식이다. 포퓰리즘은 그래서 가치중립적인 단어였다. 하지만 최근 정치적 이념과 관계없이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인을 '포퓰리스트‘로 몰아세우고 있다. 포퓰리즘의 역사를 보며 그 의미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포퓰리즘의 최초 사례로 꼽히는 것은 기원전 2세기 로마 시대 그라쿠스 형제(티베리우스와 가이우스)의 농지개혁 운동이다. 고대 로마 시대에 자영농은 자신의 땅에 농사를 짓다가 전쟁이 발발하면 군대에 들어가 군인이 됐다. 정복 활동으로 땅을 넓혀나가는 과정에서 돈이 많은 귀족은 로마로 강제 이주를 당한 노예로 농사를 지을 수 있었으나 자영농은 그러지 못했다. 농민들은 생활 터전인 땅도 빼앗기고 노동력도 노예에게 대체되자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라쿠스 형제는 로마의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으나 농민을 수호하려 했다. 농지개혁을 통해 토지를 농민에게 분배하려 하자 원로원과 갈등이 심해졌다. 형제는 평민 집회가 가진 입법권을 적극 활용해 원로원의 의사에 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결과 원로원의 심기를 거스르게 되면서 형제는 암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기득권과 반대되는 형제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으나 무산계급을 위한 그들의 시도는 높이 살 만하다.
근대적인 의미의 포퓰리즘은 1870년 러시아에서 전개된 ‘브나로드(인민 속으로) 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브나로드는 19세기 후반 제정(帝政)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의 계몽운동이었다. 당시 지식인들은 농민·노동자와 함께 생활하면서 이들의 혁명 정신을 일깨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브나로드 운동은 기본적으로 대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바라봤다. 지식인들은 스스로 ‘민중에 대한 빚’을 갚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1874년 수백 명의 러시아 청년 학생이 농촌으로 들어가 대중의 무지를 깨우치는 운동을 전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30년대 동아일보사가 주축으로 전국 농촌 계몽운동의 형태로 번졌다. 소설 '상록수'도 그 일환이다.
미국의 발전 과정에서 포퓰리즘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 정치의 근본이었다. 이는 ‘피플(people)’에서 나온 말이다. 이 용어는 미국에서 남북전쟁 당시인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게티즈버그에서 행한 연설로 더 분명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민주정치 주체를 확정한 의미가 컸다. ‘people’은 ‘인민(人民)’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링컨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였다. 인민을 앞세우는 사상과 태도가 느껴진다.
미국 인민주의자 얘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미국 자본주의 역사에 대한 진보적 기록인 ‘미국의 인민주의운동’을 남긴 애나 로체스터다. 그가 인용한 어구처럼 인민민주주의 운동은 “사회적으로 내쫓기고 직장에서 차별받고 개인적인 모욕과 때로는 신체적으로 폭력을 당하기도 했으나” 반독점 개혁 정치의 핵심적인 전통이 되어 미국 정치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이는 미국 포퓰리즘의 위대한 역사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에는 공화당과 민주당만 있었던 게 아니다. 인민당(People's Party)은 1892년부터 1909년까지 존재했던 미국의 좌익 정당이다. 1892년 창당대회에서 그들은 지향점을 이렇게 밝혔다.
“현재 미국은 도덕적·정치적·경제적으로 파탄 상태에 직면해 있다. 선거는 부패했고, 도덕은 땅에 떨어졌다. 수백만 인민이 땀 흘려 거둔 수확을 극소수 부자가 챙겨가고 있다. 도시 노동자들은 자기 보호를 위한 권리를 박탈당했다. 우리 포퓰리스트(인민주의자)들은 민주주의의 뿌리를 재건함으로써 미국의 본디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인민당원들은 부패한 관료들과 자비 없는 대기업들에 반발했다. 중서부 농부와 서민층이 주를 이뤄 공화당과 민주당을 모두 반대하고 중서부에서 놀라운 성장을 보였다. 189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윌리엄 J. 브라이언과의 선거 공조를 계기로 사실상 민주당과 합당했으나 패배했다. 이후 선거 공조에서 배제되면서 공식적으로는 1909년 간판을 내렸다.
포퓰리즘은 이 밖에도 역사적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20세기에는 중국공산당의 마오쩌둥,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아르헨티나의 후안 도밍고 페론,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포퓰리즘을 표방한 인물이다.
문화혁명은 마오쩌둥이 이끌었다. 마오를 위한, 마오에 의한, 마오의 캠페인이었다. 마오쩌둥은 어떻게 혁명적 군중을 움직일 수 있었을까. 거대한 대륙을 혁명의 도가니로 몬 마오쩌둥의 권력은 군중을 움직일 수 있는 그의 초인적 카리스마에서 나왔다. 마오쩌둥의 인격 숭배는 정치적 선동의 결과였다. 1940년대 초반부터 중국공산당은 마오쩌둥을 구심 삼아 대중 지배의 기술을 개발해 왔다. 1960년대 문화혁명 당시 마오쩌둥 인격 숭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포스터의 문구를 보자.
“위대한 스승 마오 주석에 대해선 마음에 ‘충(忠)’ 자를 품고, 위대한 마오쩌둥 사상에 대해선 격하게 ‘용(用)’ 자를 꼭 붙들고!”
혁명 군중은 그의 몽상에 열광했다. 그들은 밤낮으로 마오쩌둥 어록을 읽고, 마오가 성취한 중국혁명의 위대함에 감동하고, 마오가 제시하는 이상적 비전에 도취했다. 마오가 제시한 포퓰리즘의 꿈은 너무 달콤해 대중은 그 꿈에 현혹당하고 만다. 문화혁명은 결국 포퓰리즘의 나락이었다.
베네수엘라 포퓰리즘의 결과는 참혹하다. 차베스와 그의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경제가 무너졌다. 주요한 것은 국제유가 폭락이 방아쇠를 당겼다는 점이다. 2014년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대였다. 2015년 20~30달러 수준으로 폭락하자 국가 재정의 95%를 원유 수출에 의존해 온 경제를 지탱할 수 없게 된다. 유가 하락으로 베네수엘라는 수입이 대폭 줄어들고 원유 수출량은 대폭 감소했다. 마두로가 재원 마련을 위해 돈을 마구 찍어내자,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식료품과 생필품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베네수엘라 경제는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서민은 신음했다.
포퓰리즘은 좌익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체성의 정치’를 지향하는 모든 이의 지향점이다. 유럽의 경우에는 반이민·민족주의·기독교가 정체성의 축이 됐다. 올해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파가 휩쓸었다. 혹자는 베냐민 네타냐후의 이스라엘이야말로 ‘포퓰리즘의 실험실’이라고 한다. 이슬람 이민자 탓에 종교와 인종으로 구성된 국가 정체성이 위험해졌다고 보는 쪽이 유럽 극우 포퓰리즘 지도자들의 압도적인 주장이다. 이제 돈과 표만 되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게 포퓰리즘 지도자들의 정치적 셈법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Brexit)나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당선도 당시 포퓰리즘으로 회자됐다. 언론은 이러한 결정을 보수와 진보의 대결로 보지 않고, 엘리트와 대중의 대결 구도 양상으로 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은 대충 이렇다.
“미국의 상황은 나쁘다. 불공정한 무역협정 때문에 다른 국가에 당하고 있다. 미국의 운명은 외국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정경유착을 통해 일반 시민의 삶은 피폐해졌다. 정치인과 기업인의 지갑만 두둑해졌다. 열심히 일해도 국민의 삶은 나아질 수가 없다.”
정치인은 권력 추구가 아닌 미래를 생각하며 다수가 원하는 정책을 진정 추진하고 있는가? 대중은 인기 영합 정책에 몰입해 이성을 잃고 있지는 않은가? 포퓰리즘의 진정한 기치를 생각하며 포퓰리즘이 표(票)퓰리즘이 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무엇인지 민주주의 관점에서 진심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조원경 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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