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상 인정받지 못한 동성부부의 법적 권리가 앞으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제도에서는 인정받게 됐다. 대법원이 동성부부 피부양권을 인정하지 않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처분을 위법하다고 확정 판결을 내리면서다. 건강보험에서의 동성혼 차별이 철폐된 만큼 다른 행정 분야에서도 정부가 차별을 해소하고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안을 내놓기 바란다. 더 나아가 동성혼 합법화에 대한 논의도 필요한 시점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어제 소성욱씨가 건보공단을 상대로 낸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국민건강보험법령에서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에서 배제하는 명시적 규정이 없는데도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하는 것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이라고 밝혔다. 이어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 행위이고 그 침해의 정도도 중하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소씨는 동성 반려자 김용민씨와 2019년 결혼식을 올리고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인 김씨의 피부양자로 등록하려 했으나 공단이 인정하지 않고 보험료를 내라는 처분을 내리자 소송에 나섰다. 1심에서는 패소했다가 지난해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항소심은 ‘행정청은 합리적 이유 없이 국민을 차별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조항(행정기본법 9조)을 근거로 “사실혼 배우자 집단과 동성 결합 상대방 집단은 이성인지 동성인지만 달리할 뿐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피부양 자격을 인정했다.
이번 판결은 그동안 엄연히 존재하지만 어떤 권리도 갖지 못했던 성소수자 인권에서 진일보이다. 또한 상속, 연금, 수술 동의서와 같은 다른 행정 제도상의 차별 철폐로도 이어질 수 있는 시금석이라 할 만하다. 각종 행정 차별에 대해 동성부부가 소송을 내면 이번 대법 판례를 토대로 승소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도 사법부 판단만 기다릴 게 아니라, 소수자 인권 향상을 위해 더 적극적인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소수자 권리 보장과 가족의 다양성 인정은 시대적 추세이다. 선진 주요 7개국(G7)은 일본만 빼고 모두 동성혼을 합법화했고, 대만이 2019년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법제화했다. 혐오의 목소리가 아무리 과대 포장되어도 소수자 권리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방향임을 알아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