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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수급자가 호텔급 TV·가구로 세간살이 마련한 비결은?

입력
2024.07.17 18: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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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나스호텔, 가구·가전 기부
"리노베이션 객실 용품 재활용"
서울시, 임대가구 등 취약층 전달

서울 강서구 LH매입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유모(64·앉은 이)씨가 호텔의 기부로 새로 마련한 47인치 TV를 보며 흡족해하고 있다. 박민식 기자

서울 강서구 LH매입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유모(64·앉은 이)씨가 호텔의 기부로 새로 마련한 47인치 TV를 보며 흡족해하고 있다. 박민식 기자

"와, 화면이 훨씬 크고, 화질도 선명하고 좋네요."

서울 시내 여관과 고시원을 7년 이상 전전하던 지적장애인 유모(64)씨는 지자체와 강서주거안심종합센터 주거상담소의 도움을 받아 5월 말 4.5평짜리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했다. 안락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더 이상 살 곳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지만, 각종 가전제품과 생활용품이 부족한 것이 아쉬움이었다. 상담소 등의 지원으로 침대, 전자레인지, 청소기를 마련했다. 필수 가전인 TV는 지인에게서 받은 30인치 구형 제품을 사용했다.

세간살이가 부족해 아쉬움을 느꼈던 그는 17일 47인치 대형 TV, 침대 옆에 놓는 작은 탁자(협탁), 겨울에 사용할 오리털 이불을 한 푼 들이지 않고 마련했다. 상담소의 도움으로 최고급 호텔에서 기증한 최고급의 가전·가구·생활용품을 지원받은 것. 고급 TV와 협탁, 이불이 줄지어 들어오자 그의 방도 제법 사람 사는 구색이 갖춰졌다.

유씨는 화면이 가끔씩 지직거렸던 TV를 교체하게 된 것이 가장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TV 전원이 켜진 순간 그는 박수를 치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는 "드라마와 영화를 즐기고, 스포츠 경기도 자주 보는데 화면도 크고 선명하니까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날부터 유씨를 비롯한 임대주택 거주 취약계층 18가구에 서울 파르나스호텔에서 기부받은 가전·가구 등 각종 용품을 전달한다. 쪽방상담소 5곳, 아동·노숙인·장애인 복지시설 60곳, 종합사회복지관 11곳, 지역자활센터 2곳, 주거복지센터 6곳에도 필요한 물품을 전달할 예정이다.

1999년 강남구 삼성동에 문을 연 파르나스호텔은 리노베이션을 위해 1일부터 영업을 잠정 중단했다. 호텔은 객실, 연회장, 웨딩홀, 레스토랑에서 쓰던 TV 693점, 소형 냉장고 550점, 침대 900여 점, 테이블 2,400점, 의자 1,957점 등 약 1만2,000점(30억 원 상당)을 서울시에 기부했다. 시는 앞서 6월 쪽방상담소, 주거복지센터, 지역자활센터 등을 통해 물품이 필요한 곳을 신청받아 대상 가구와 시설을 선정했다.

파르나스호텔 관계자는 "5성 호텔이니까 객실 가전제품과 침대 등 각종 물품을 프리미엄급으로 갖춰 잘 관리해왔다"며 "어려운 분들을 돕자는 취지에서 기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파르나스호텔은 2020년에도 다른 호텔의 객실을 리노베이션하면서 2,600여 점을 기부했다고 한다.

시는 2015년 '호텔 교체 후원 물품 활용 저소득층 지원사업'을 시작해 14개 호텔과 업무협약을 맺고 복지시설과 취약계층에 물품을 후원하고 있다. 2017년에는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이 신관을 리노베이션하면서 교체되고 남은 TV와 소형냉장고, 침대, 탁자, 소형 소파 등 1만2,048점을 시가 기증받아 공공임대주택 105가구에 전달했다. 같은 해 워커힐호텔도 객실을 개선하며 재사용이 결정된 일부 장식품을 제외한 TV, 냉장고, 침대, 실내등, 테이블, 의자, 거울 등 객실 물품 16종 1,156점을 전부 기부해 임대주택 거주 41가구에 전달했다.

시 관계자는 "시내 특급호텔을 새 단장할 때 나오는 생활용품이 주거환경이 열악한 쪽방, 임대·지원주택 등에 지원돼 저소득 가정의 생활 안정을 돕고, 폐기하지 않고 재활용해 자원 순환에도 기여하는 일석이조 효과가 있다"며 "호텔 교체 후원물품 활용 사업을 앞으로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 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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