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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권 재생에너지 10년 뒤 59GW나 된다는데…수도권 도착 가능한 건 '4.4GW'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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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고 소화해야 몸에서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듯,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늘어나도 전력망으로 소화할 수 없으면 에너지로서 의미가 없다. RE100도 재생에너지 발전만으로는 인정받을 수 없다. '전력 계통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기'여야 RE100에서 요구하는 인증 프로그램을 통과할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전력망은 앞으로 늘어날 재생에너지를 소화할 수 있는 상태일까. 한국일보는 정부의 전력설비 계획을 중심으로 따져봤다.
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lectricity) 100%'의 약자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2050년까지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채우겠다는 목표의 글로벌 캠페인이다. 2014년 영국 런던의 다국적 비영리기구인 '더 클라이밋 그룹'에서 발족했으며 정부가 강제한 것이 아닌 글로벌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로 진행된다.
일단 전력망을 이해하기 위해선 전기가 공급되는 과정을 알 필요가 있다. 전기는 '발전소→발전변전소→송전선로→지역변전소→배전선로'의 단계를 거쳐 각 공장과 기업에 보내진다. 발전변전소는 많은 양의 전기를 손실을 줄이면서 멀리 보내기 위해 고압으로 끌어올려 고압 종류(765킬로볼트(kV), 345kV, 154kV)에 맞는 송전선로에 전기를 '싣는' 역할을 한다. 고압으로 흐르던 전기는 수요처 인근 지역 변전소에서 전압을 낮춰 배전선로로 보내진다. 이 선로는 보통 중압(1kV~69kV)과 저압(100V~1kV)으로 나뉘어 공장과 같은 큰 시설은 중압 전기를 직접 받아 쓴다. 일반 가정에는 저압 전기를 공급한다.
정부는 2년에 한 번 대한민국 전력 수요와 공급을 예측해 전력기본계획을 짜고 이에 따라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을 세운다. 이 계획의 핵심은 변전소를 어디에 추가로 세우고 송전선로를 연결하느냐다. 용량도 중요하다. 765kV 변전소와 송전선로가 '고속도로'급이라면 345kV 변전소와 송전선로는 '간선도로'급이다. 765kV 변전소와 송전선로는 고압 설비로 주민들이 동의하는 수용도가 유독 낮아 정부는 주로 345kV 변전소와 송전선로를 중심으로 추가 계획을 짜고 있다.
정부는 2036년까지 전국에 108.3기가와트(GW)의 재생에너지를 보급할 계획이다. 이 중 절반이 넘는 59GW는 호남권에 몰려 있다. 59GW는 상당한 양이다. 통상 원자력발전소 1기의 발전용량이 1GW인 것을 고려하면 원자력발전소 59기에 맞먹는 발전량이다. 59GW 중 태양광은 41.4GW, 풍력은 15.4GW다. 태양광의 경우 정부가 2036년까지 보급 목표로 세운 65.7GW의 63%가 호남권에 집중돼 있다. 해상풍력은 수심이 얕고 바람 자원이 풍부한 신안(8.2GW), 여수·고흥(6.0GW), 서남권(2.4GW)에 모여 있다.
주목할 건 정부 계획대로 호남권에서 신재생에너지를 59GW 늘려도 대부분 남는 전기가 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현재 호남권의 전력 공급, 수요량은 계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각각 9GW, 5GW 안팎이다. 계획대로면 호남권 전력 공급량은 약 68GW가 되고 남는 전기가 63GW나 된다. 전력 수요가 많은 곳으로 흘러가는 전기 특성상, 호남권에서 생산하고 남는 전기는 최대 전력 수요처인 '수도권'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수도권은 삼성전자 등 주요 반도체 공장을 비롯해 각종 생산 설비 등이 몰려 있어 수요(27.4GW)가 공급(18.7GW)을 앞지른 수급 불균형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남권 전력망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호남권에서 수도권으로 올라가는 345kV 송전선로는 ①신강진변전소에서 서서울 변전소로 이어지는 것과 ②광양변전소에서 삼성전자변전소 및 동서울변전소 등으로 이어지는 것 단 2개뿐이다. 특히 2개의 송전선로가 이동시킬 수 있는 전기 용량은 약 4.5GW뿐이다. 즉 호남권에서 4.5GW만 보내고 나면 나머지 58.5GW는 '써보지도 못하고 버려야 하는 전기' 신세가 된다는 얘기다.
특히 현재 전력망 수준으로는 2027년 가동을 목표로 짓고 있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력 10GW를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반면 호남권에서는 전기가 남을까 봐 걱정하는 장면도 연출될 가능성이 높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반도체 산업에 쓸 재생에너지가 부족하진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원전이냐 재생에너지냐를 두고 다투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국 남는 전기를 전력망을 통해 쓸 수 있어야 하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와 한국전력도 이런 문제를 알고 호남권과 수도권을 잇는 송전선로를 확충하는 데 무게를 두고 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전남 해남군 등 6개 지역에 345kV급 변전소를 추가로 짓고 호남권에서 수도권 방향으로 이어지는 송전선로를 17개 추가한다. 해남과 새만금에서 시작해 서해안을 통해 영흥과 인천으로 연결되는 500kV 고전압직류송전선로(HVDC) 2개도 계획했다.
문제는 이 계획이 모두 실행될 수 있을지 미지수란 점이다. 10차 설비계획에 따르면 전북 서남권 해상풍력(2.4GW)과 전남 신안 해상풍력(8.2GW) 단지 발전량을 소화하기 위해선 신안 풍력단지는 전남 함평과 영광을 거쳐 '신장성변전소'로 이어져야 하고 서남권 풍력단지는 전북 고창을 거쳐 '신정읍변전소'에 연결된 뒤 충남의 '신계룡변전소'까지 가야 한다. 하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이 변전소 및 송전선로 건설을 막고 있다. 특히 신장성변전소는 2015년 입지 공모를 낸 뒤 10년 가까이 삽도 못 뜨고 있다.
신장성변전소 건설 지연 사정을 잘 아는 한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는 "신장성변전소는 2026년 완공이 목표"라며 "따지면 1년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지금 당장 착공해도 모자란데 지난해에는 지역 주민들이 아예 백지화 주장을 펴기 시작해 목표 연도에 맞춰 변전소를 짓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변전소와 송전선로는 '바늘과 실'의 관계와 같다. 변전소가 계획대로 지어지지 않으면 송전선로도 뒤따르지 않게 되고 전력망 확충도 어려워지는 구조다. RE100은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확보한 뒤 실제 전력 계통에서 쓸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야 인정받을 수 있는데 전력망 확충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면 국내에서 RE100 달성은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이에 한전은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특별법이 만들어지면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국가전력망 확충위원회'가 꾸려진다. 위원회가 전력망 확충 관계 부처에 권한을 줘 한전과 주민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고 인허가 절차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어 전력망 구축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전 관계자는 "RE100 가입 기업들의 공장은 주로 재생에너지가 부족한 수도권에 쏠려 있다"며 "호남 지역의 잉여 발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낼 지역 간 송전선로가 있어야 RE100을 달성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050년 RE100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인터랙티브에서는 지역별 전력수급상황과 앞으로의 송전선로 설비계획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인터랙티브 바로가기 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electric-path/ (클릭이 안 되면 링크주소를 복사+붙여넣기 하세요)
※본 기획물은 SNU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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