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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받아 쓰던 한국차 이젠 日부품 1%…100년 버틴 일본 유통망 뚫은 소주

입력
2024.08.06 09:00
수정
2024.08.08 14:23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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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70주년 기획 : 한일 맞서다 마주 서다]
<2> 일본이 무시 못 하는 '큰손' 한국
수치스런 수식어 '가마우지 경제론' 따라붙더니
한국 기업들, 일본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거나
까다롭고 진입장벽이 높은 일본 시장 뚫어내고
세계적인 일본 기업과 어깨를 견줘 경쟁 중

편집자주

가깝고도 먼 나라,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던 일본은 이제 한국과 동등하게 마주 선 관계가 됐다. 활발한 문화 교류로 MZ세대가 느끼는 물리적 국경은 사라졌고, 경제 분야에서도 대등한 관계로 올라섰다.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한일 관계의 현주소와 정치 외교적 과제를 짚어본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국 산업이 고도화되지 않은 시절. 기업들은 경제 대국 일본을 좇기 바빴다. 심지어 새가 물고기를 잡으면 낚시꾼이 새의 목을 줄로 당겨 물고기를 채가는 '가마우지 낚시법'에 빗대, 한국 기업이 일본 부품으로 완성품을 만들어 수출하면 대부분의 이익을 일본이 가져간다는 '가마우지 경제론'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한국 기업들은 일본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거나 까다롭고 진입장벽이 높은 일본 시장을 뚫어내거나 세계적 일본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 중이다.


미쓰비시와 협력하던 현대차, 완벽한 탈일본화 이루다

현대차 수소 슈퍼카 'N 비전 74'(왼쪽)와 과거 미쓰비시 도움을 받아 생산한 '포니'의 모습. 현대차 제공

현대차 수소 슈퍼카 'N 비전 74'(왼쪽)와 과거 미쓰비시 도움을 받아 생산한 '포니'의 모습. 현대차 제공


현대차는 일본 기업과 협력하다 '탈(脫)일본화'를 이뤄낸 기업이다. 현대차의 시작으로 불리는 포니(1976년 생산)는 일본 자동차 기업 미쓰비시의 도움으로 탄생한 차다. 자동차의 뼈대와 심장에 해당하는 섀시 및 파워트레인의 개발에는 미쓰비시의 소형차인 랜서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후 두 기업은 본격적으로 협력 관계를 이어갔다. 1986년 발표한 현대차 그랜저는 미쓰비시의 데보네어V였고 엘란트라와 쏘나타 등에 들어간 엔진도 미쓰비시 엔진을 활용한 것이었다. 갤로퍼도 미쓰비시 자동차의 파제로 1세대 모델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현대차는 고급 세단 에쿠스 1세대를 분업 생산한 것을 끝으로 독자 생산의 길로 접어들었다.

현대차는 미쓰비시와 협력하는 동안 서스펜션, 브레이크, 엔진 마운트, 배기 시스템 등은 샘플 자동차를 분해한 뒤 역설계해 개발을 이어가는 방식을 사용했다. 차량 구성 요소를 100% 도면화하고 관련 기술을 빠르게 현대차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었다. 현대차 고위 간부를 지낸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1970~90년대 사이에는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완성차에 들어가는 수많은 부품을 직접 만들어 낼 능력을 다져야 한다는 일념만 있었다"며 "그 결과 에쿠스 2세대부터 독자 생산한 엔진과 후륜구동 플랫폼을 적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2009년 출시된 에쿠스 2세대에는 V6 3.8리터(L) 람다 엔진과 V8 엔진인 4.6L 타우 엔진이 들어갔다. 현대차는 이때 변속기 개발에도 속도를 냈는데 2010년 미쓰비시 자동차는 현대차의 변속기 가격을 조사하기도 했다. 미쓰비시 자동차가 현대차에 부품을 공급받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내연 기관차의 핵심인 엔진과 변속기를 완전히 국산화하면서 현재 현대차그룹이 생산하는 차종에 들어가는 부품 중 일본산 부품 비율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현대차그룹 부품 계열사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변속기로 유명한 일본 자동차 부품기업 '아이신'을 제치고 글로벌 자동차부품업체 '톱5(매출액 기준)'에 오르기도 했다. 현대모비스는 이에 그치지 않고 2021년부터 일본으로 진출, 수주 확대를 꾀하고 있다. 특히 미쓰비시에 42년 동안 몸담았던 유키히로 하토리가 현대모비스 동경지사장으로 지원한 건 한국 자동차 부품 기업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일본은 도요타 등 완성차 중심으로 부품 기업들이 완전한 수직계열화를 이뤄 뿌리내리기 어려운 시장"이라면서도 "현대차와 모비스가 일본 완성차, 부품 기업보다 한발 빠르게 전기차 플랫폼 및 부품군을 갖췄다는 강점을 바탕으로 일본 시장을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가 미쓰비시와 협력 관계를 끝내고 완전히 독자적으로 생산한 고급 세단 에쿠스 2세대. 현대차 제공

현대차가 미쓰비시와 협력 관계를 끝내고 완전히 독자적으로 생산한 고급 세단 에쿠스 2세대. 현대차 제공


일본 카르텔 '오로시' 벗어나도 소주 1위 하이트진로

하이트진로가 일본에서 선보인 참이슬. 하이트진로 제공

하이트진로가 일본에서 선보인 참이슬. 하이트진로 제공


일본 완성차 기업과 부품 기업 간의 수직계열화가 유독 심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일본은 제품군을 따지지 않고 외국 기업에 배타적 시장으로 유명하다. 많은 외국 기업들이 '국적'을 희석하기 위해 일본 기업과 합작 법인을 만들어 진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일본 주류 유통 시장의 장벽은 유독 높은 것으로 유명한데 한국 브랜드 그대로 모기업이 100% 지분을 가진 현지 법인으로 자리 잡은 곳이 있다. 바로 '하이트진로'다.

하이트진로는 1977년 본격적으로 일본에 수출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소주 맛을 본 일본인들이 소주를 찾자 일본 기업을 통해 10만 병을 판 것이 첫 번째였다. 여기에 탄력을 받은 하이트진로는 1986년 일본 동경사무소를 시작으로 1989년 단독 법인을 설립했다.

일본 주류 시장은 복잡한 주류 유통망 '오로시'로 유명하다. 일본에서 술이 움직이는 과정은 1차, 2차, 3차 도매상이 차례로 상하관계로 맺어져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주류 생산업자가 1차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2, 3차 도매상과 거래를 하거나 소비자와 직거래하게 되면 해당 도매상과의 거래는 영원히 끊기고 이들이 관리하는 지역에 술을 팔 수 없게 된다.

하이트진로도 이런 환경 탓에 진출 초기에는 오로시와 특약을 맺고 술을 유통했다. 직접 도매상들에게 판촉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데 공을 들였다. 일단은 한국의 소주가 일본에 퍼지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이었다. 그 결과 1990년대 중반 판매량이 크게 늘어 일본 소주 시장에서 1993년 8위, 1994년 6위, 1996년 2위에 올랐다. 2년 뒤인 1998년에는 정상에 올랐다. 국내 제품이 단일 품목으로 일본 시장서 1위를 한 것은 진로 소주가 처음이었다.

일본 내에서 진로 소주의 위상이 올라간 만큼 하이트진로는 2000년부터 일본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직접 판매 영업 체제'로 탈바꿈했다. 하이트진로→일본 도매상(오로시)→특약점→소매상→소비자로 이어졌던 유통망에서 하이트진로가 오로시를 건너뛰고 특약점이나 소매상에게 팔기 시작한 것이다. 하이트진로의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1998년 첫 1위 등극 이후 2004년까지 7년 연속 일본 시장 1위 자리를 지켰다. 한 주류 수출 관계자는 "수백 년 동안 일본 주류 시장을 지배한 오로시를 극복하고 진로가 완전히 일본 시장에 자리를 잡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이트진로는 일본에서 성공한 현지화 전략 노하우를 중국·동남아에 적용, 국가별 차별화 전략을 통해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2022년 일본 수출용으로 병 색깔과 라벨을 교체한 진로 소주 제품 광고. 하이트진로 제공

2022년 일본 수출용으로 병 색깔과 라벨을 교체한 진로 소주 제품 광고. 하이트진로 제공



삼성전자와 소니, 끊임없는 엎치락뒤치락

삼성전자의 새 이미지센서 '아이소셀 HP9'.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의 새 이미지센서 '아이소셀 HP9'. 삼성전자 제공


전자업계는 끊임없이 일본 기업과 엎치락뒤치락하며 경쟁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삼성전자가 있다. 삼성전자에 소니는 언젠가는 넘어야 할 벽이었다. 일본 전자제품은 한국인들에겐 우러러보는 대상이었다. 소니가 '워크맨'으로 세계를 휩쓸고 1980년대 후반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들은 도쿄의 전자상가인 아키하바라에서 직접 눈으로 본 일본 상품의 디자인과 성능에 감탄했다. 한 전직 삼상전자 고위 관계자가 "40년 전만 해도 소니 제품 사서 뜯어보려고 일본에 출장을 갔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삼성전자는 소니의 전자제품을 선망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길을 택했다. 1980년대 초반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 투자하기 시작했다. 소니 등 당시 전자 기업들은 가전용 중심의 비메모리 반도체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삼성전자는 이와 반대로 메모리 반도체 그중에서도 D램을 주력 제품으로 키웠다. 이마저도 히타치, 도시바 등 일본 전자 기업들이 기초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거절당하고 혼자 힘으로 개발하기 시작, 1983년 64K D램을 세상에 내놓았다.

10년 만인 1992년에는 16M D램을 개발해내면서 삼성전자는 일본의 도시바를 제치고 1992년부터 D램 분야에서, 1993년부터는 메모리 반도체에서 세계 최고의 생산업체로 떠올랐다. 이후 삼성전자는 2003년~2022년 매출이 594% 성장했고, 이익도 503% 늘었다. 반면 소니는 2003년 영업이익이 30%나 떨어지는 어닝쇼크를 겪은 뒤 같은 기간 동안 매출이 54%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삼성전자가 소니를 제쳤다"는 평가 일색이던 시기가 이때다.

그런데 최근 삼성전자와 소니가 이미지센서로 다시 맞붙고 있다. 이미지센서는 통상 카메라 렌즈에 사용된 기술인데 자율주행차량에 적용돼 차의 '눈'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미지센서 시장에서 소니와 삼성전자는 글로벌 시장점유율 1, 2위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소니는 TSMC와 손잡고 일본 구마모토에 반도체 공장을 지은 뒤 최근 도요타를 비롯한 8개 주요 일본 기업과 반도체 합작회사를 설립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 삼성전자 간부는 "소니를 제쳤다고 기분 좋게 말하던 시기는 지났다"며 "다시 소니와 미래 자율주행차를 두고 경쟁하는 시간이 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전자업계에서 일본 기업은 영원한 경쟁 상대"라고 덧붙였다.


차량 앞뒤 카메라 등 이미지센서가 적용되는 부분들. 삼성전자 제공

차량 앞뒤 카메라 등 이미지센서가 적용되는 부분들.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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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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