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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정치 권력, 절제된 분노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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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집요한 취재로 정치권과 관가, 기업 등이 감추고 싶어 하는 비리를 파헤치는 탐사 보도(investigative report)는 '분노'를 연료 삼아 추동력을 얻곤 한다. 두 가지 의미에서다. ①기자가 거악을 목도하거나 의심해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고, 이를 기어코 세상에 알리겠다고 결심할 때 맹렬한 취재가 가능해진다. 또, ②탐사 보도를 읽은 독자들이 가해자들의 악행에 치를 떨며 공분을 표출할 때 세상이 움직여 형사 처벌 등 악자들을 벌할 수 있다.
미국의 탐사 저널리스트들이 모여 만든 전미 탐사보도협회(investigative reporter and editors)의 약자인 IRE가 '분노'라는 뜻을 담고 있다는 점은 공교롭지만 필연적이다. 이 단체는 1976년 애리조나 리퍼블릭의 기자인 돈 볼스의 죽음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던 볼스는 당시 유력 정치인과 마피아들의 커넥션을 쫓던 중 차량 폭탄테러로 숨졌다. 이에 분노한 미 전역의 탐사 보도 기자 약 40명이 '애리조나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모여 볼스가 하던 취재를 마무리했다. 이 프로젝트가 IRE의 모태다.
다만, 분노가 절제되지 못하면 사달이 난다. 사적 감정이 지나치게 앞서 복수심으로 나아가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특정 정치인이나 기업 등을 응징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보면 자신이 취재하거나 제보 받은 내용의 신뢰도를 이성적으로 따지지 못하게 된다. 이는 오보로 이어진다. 결국 분노는 탁월한 보도의 원동력이 될 수도, 언론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절제된 분노가 필요한 곳은 언론만이 아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정의로운 분노는 권력 쟁취와 사회 개혁의 동력이 되지만 자칫 사적 앙갚음에 눈이 멀면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정치를 하게 된다.
윤석열 정권도 초반에는 분노의 덕을 봤다. 윤 대통령은 '반문재인' 정서에 기대어 별다른 정치 경험 없이 국가 의전 서열 1위 자리에 올랐다. 대중적 분노와 심판 의지가 이 정권을 탄생시킨 감정적 기반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집권 2년 만에 국민적 신뢰를 크게 잃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분노심에 기댄 국정 운영 탓이 크다. 권력을 잡고도 제대로 된 국정 어젠다는 보여주지 못했고, 전 정권 지우기에만 골몰한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적지 않은 국민들이 실망했고, 돌아온 결과는 총선 참패와 20%대를 오가는 대통령 지지율이었다. 고 채수근 해병대 상병 사망 사건과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논란 탓에 궁지에 몰렸지만 윤 대통령은 딱히 태도 변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의 실정에 분노한 민심 덕에 '여의도 권력'을 장악한 야권도 절제되지 못한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 절차 돌입이 대표적이다. 탄핵 명단에 이름이 오른 이들은 모두 대장동과 백현동, 대북송금,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등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민주당을 향한 의혹을 수사한 검사들이다. 민주당은 '정치검찰 심판'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보복성 탄핵 추진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여론의 공분에 올라타면 권력은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집권 이후에도 사적 복수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권력 또한 유권자들의 심판 대상이 된다. 절제되지 못한 분노에 정치인 스스로 잡아 먹혀 국민 모두가 불행해지는 일. 이제는 그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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