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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첼로를 주연배우로 격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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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는 인간의 음성과 가장 가까운 음역대를 공유한다. 따뜻하고 그윽한 음색으로 우리 귀와 마음에 편안히 다가온다. 마치 연인처럼 악기를 부둥켜안고 연주하는 첼리스트는 두 무릎 사이에 첼로를 밀착하고 악기의 목 부분을 왼쪽 어깨와 접촉시킨다. 그러므로 연주자와 가장 친밀한 스킨십이 구현되는 악기라 할 수 있다.
현악기군에서 중저음을 담당하는 첼로는 바이올린이나 비올라, 더블 베이스보다 훨씬 넓은 음역을 아우른다. 악기를 들고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는 엄지손가락으로 악기를 지탱해야 하지만, 바닥에 내려놓고 연주하는 첼리스트의 엄지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운지법에 손가락을 하나 더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장점이다.
첼로의 목소리를 상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율 중 하나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중 전주곡'일 것이다. 묵직한 음색이 서로 다른 질감을 품은 채 입체적으로 공명하는데, 이때 첼리스트는 바리올라즈(bariolage)라는 연주 기법을 활용한다. 한 성부는 지판을 눌러 통제된 채 움직이는 음색이고, 다른 성부는 개방현으로 열어두어 일정한 음정에 머물되 시원히 트인 음색이다. 이 두 개 현 사이를 첼리스트의 활이 물결치듯 번갈아 공명시킨다. 전주곡의 시작부터 겹겹의 층을 이뤄 서로 다른 질감을 자아내는 건 이 독특한 기법 덕택이다.
바흐가 활약하던 바로크 시대만 해도 첼로는 바이올린의 영광에 가려져 있었다. 독주 악기로 주목받지 못한 채 쳄발로 같은 건반악기의 왼손 베이스를 단순히 중복하며 저음부를 보강하는 데 자족해야 했다. 하지만 바흐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통해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이 악기를 주연배우로 격상한다. 게다가 첼로에 아무런 반주를 붙이지 않고 과감히 독주 악기로 내세웠다. 단 하나의 악기만으로 다채롭고 풍성하며 완전한 음향을 구현한 것이다. 받쳐주는 악기가 없는데도 음색이 지루하지 않다. 모노드라마에서 배우가 홀로 연기한다 해도 독백뿐만 아니라 방백과 대화로 무대를 장악하는 것처럼 첼리스트도 선율, 화성, 리듬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며 종횡무진 활약한다. 첼로란 악기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하면서 연주자뿐만 아니라 청중에게도 첼로의 각별한 매력을 일깨웠던 것이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바흐를 낯설게 여기는 사람들이 친근하게 다가가기 좋은 악상을 품고 있다. 첼로가 무반주로 홀로 연주하는 덕택이다. 바흐의 여타 다른 작품들은 여러 성부가 수학적 질서로 복잡하게 얽힌 대위법의 정수를 드러낸다. 하지만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자유롭고 직관적이다. 감정과 충동이 살아있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이성적 바흐보단 인간적 바흐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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