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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없는 이웃, 다정한 이웃

입력
2024.07.11 22:00
26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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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를 타는 딸과 차로 외출할 때 꼭 확인해야 할 정보 중 하나가 목적지에 장애인 주차구역이 있는지 여부다.

장애인 주차구역이라고 하면 씁쓸한 기억이 떠오른다. 휠체어 타는 자원봉사자와 함께 접근성 조사를 하러 나갔는데, 한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떤 어르신이 "장애인들이 요즘은 대통령보다 더 특혜를 받는다"며 시비를 걸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어르신은 "백화점에 장애인 주차구역이 많이 비어 있는데 내 차를 못 대게 하더라. 이건 역차별"이라고 했다.

장애인 주차구역을 이용하고 싶은 어르신의 심리는 알겠다. 장애인 주차구역이 보통 주차장에서 건물로 이어지는 입구에 있어 주차하기 편리해서다. 그러나 장애인 주차구역을 건물 가까이에, 널찍한 공간으로 마련하고, 언제나 비워 놓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휠체어째로, 또는 휠체어에서 차로 옮겨 탈 때 옆 공간이 많이 필요해서고, 건물 입구와 먼 곳에 장애인 주차구역이 있으면 사고 위험이 커져서다.

"어르신, 휠체어를 타면 주차하는 데 공간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비워 두시는 게 맞습니다. 특혜가 아니라 안전상 꼭 필요해요." 설명을 시작하자 어르신의 목소리가 뾰족하게 변했다. "너 몇 살이야?" 버릇없다며 욕을 하는 어르신에게 "전 욕 안 할 겁니다"라며 꿋꿋이 설명을 이어갔다.

이 사건 이후 나는 어느 강연장에 가든 장애인 주차구역 위반 차량을 신고하는 방법을 청중에게 설명한다. 신고 앱을 깔고 위반 차량이 장애인 주차구역에 서 있는 모습을 1분 단위로 사진을 찍어 두 장을 앱에 업로드하면 위반 차량에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설명한다. 덧붙이는 말도 잊지 않는다. "백화점이나 마트 같은 공공장소보다 공동주택, 즉 아파트나 빌라 같은 곳의 장애인 주차구역 위반을 꼭 신고해 주세요."

공동주택에선 "이웃끼리 왜 이래"라는 명분으로 소소한 위반을 더 쉽게 눈감는 경향이 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경비소에서 위반 행위를 묵인하며 되레 항의하는 장애 주민에게 "정 없이 왜 이러나. 이웃끼리 참으라"고 하는 경우도 봤다. 그러나 어떤 게 진짜 '정 없는' 행동일까. 휠체어 타는 친구가 용기를 내 몇 차례 위반 차량을 신고했는데, 위반 차량 차주가 블랙박스를 보고 스토킹하듯 집으로 찾아온 적이 있단다. 휠체어 타는 주민이 드물기 때문에 쉽게 특정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아예 처음부터 읍소 전략으로 나가기도 한다. 남편이 휠체어 이용자인 한 부부는 이런 이웃 분쟁이 싫어서 이사할 때마다 아예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장애인 주차구역을 꼭 비워달라'는 안내문을 공손하게 게시하기도 한단다.

"그래서 비장애인 주민들이 같이 신고해 주셔야 해요. 장애인의 접근권이나 이동권은 특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하는 기본 권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기도 해요." 서글프게도 이렇게 비장애인 주민들이 같이 나서야만 장애 주민들의 기본권이 특혜로 오인되지 않는다.

장애인 주차구역뿐일까. 지하철이나 열차에 있는 휠체어 구역에 자전거나 캐리어를 두고 가지 않는 것, '잠깐이면 괜찮겠지'라며 경사로가 있는 곳 앞을 차로 막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그런 행동에 경고장을 함께 날려 주는 이웃들이야말로 '정 없는 이웃'이 아니라 진정 다정한 이웃이다.


홍윤희 장애인이동권증진 콘텐츠제작 협동조합 '무의'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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