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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청 로고엔 뭐가 담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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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연구나 과학계 이슈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일들을 과학의 눈으로 분석하는 칼럼 ‘사이언스 톡’이 3주에 한 번씩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패션 브랜드 ‘코치’는 2017년 독특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가방과 재킷, 셔츠, 신발 같은 제품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 로고와 함께 행성, 발사체, 우주인 등을 그려 넣었다. ‘코치 스페이스 라인’이라고 이름 붙인 이 제품들은 당시 패션계에서 화제를 모았다.
코치 스페이스 라인의 등장은 잊힐 뻔한 나사 로고를 되살려 놓은 계기가 됐다. 뉴욕의 디자이너들이 1975년 만든 그 로고는 아무런 배경 그림이나 장식을 넣지 않고, 나사 이름의 알파벳 네 자만 모난 부분 없이 구불구불하면서 두꺼운 빨간 글씨체로 단순하게 표현했다. 꿈틀거리는 듯한 생김새 덕에 ‘벌레’라는 우스꽝스러운 별명이 생긴 것 외에 큰 주목은 받지 못한 채 1992년 사용이 중단됐다. 1986년 나사의 우주왕복선 ‘챌린저’가 폭발해 탑승했던 대원 7명이 목숨을 잃고, 1990년 나사가 쏘아 올린 허블 우주망원경에 결함이 생긴 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거란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기술 부족이 로고 탓이었을 리 만무하지만,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나사로선 그렇게라도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을 터다.
벌레 로고 중단과 함께 나사는 옛 휘장의 귀환을 알렸다. 1959년 나사 내부에서 제작한 휘장은 작은 흰 점들이 흩어져 있는 파란색 원 한가운데에 나사 알파벳이 흰 글씨체로 적혀 있고, 그 위에 흰색 궤도 모양과 빨간색 화살촉 모양을 비스듬하게 얹어놓은 형태다. 원은 행성, 점은 별, 궤도는 우주선을 뜻한다. 화살촉 모양은 로고가 만들어졌을 당시 항공기 날개의 최신 디자인을 따왔다. 그래서인지 이 휘장에는 항공 분야의 착륙 시스템 이름과 같다는 ‘미트볼’이란 별칭이 붙었다. 벌레 로고 등장 전까지 미트볼 휘장은 냉전시대 눈부시게 발전한 미국 우주기술을 상징했다. 1969년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의 우주복에도 이 휘장이 있었다. 나사로선 미트볼 휘장의 귀환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는 전환점으로 여겨졌을지 모른다.
미트볼 휘장의 귀환 이후 벌레 로고도 돌아왔다. 벌레 로고의 미니멀한 디자인과 나사의 미래 지향적인 콘셉트에 주목한 코치의 안목이 큰 역할을 했다. ‘로켓처럼 날아가기 전에 구매하라’는 코치 스페이스 라인의 한정판 마케팅 전략이 소비자들 심리를 자극하면서 벌레 로고에 이목이 집중되는 효과도 가져왔을 것이다. 코치가 살려낸 벌레 로고는 2020년 발사 현장에서 부활했다. 나사 우주인들을 국제우주정거장에 태워다 준 미국 기업 스페이스X의 우주선 ‘크루 드래건’을 실은 발사체 ‘팰컨9’의 옆면에 꿈틀대며 자리 잡은 네 글자를 본 미국인들은 “벌레가 돌아왔다”며 환호했다. 벌레 로고는 미국 워싱턴DC 나사 본부 출입구에도 세워졌고, 유인 달 탐사 프로그램 ‘아르테미스’에 쓰일 장비 곳곳에도 새겨지고 있다.
나사가 만들어온 우주개발 역사, 독보적인 기술과 함께 나사의 휘장과 로고는 유일무이한 브랜드가 됐다. 나사 휘장과 로고는 사전 신청 후 허가를 받으면 표준 매뉴얼에 따라 사용할 수 있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지 50주년이었던 2019년에는 나사 로고를 새긴 제품이 늘기도 했다.
지난 5월 문을 연 우주항공청이 로고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구성원들의 자부심을 높이고 대중과 소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주청의 비전과 철학이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많다. 개청 이후 첫 국제 행사인 국제우주연구위원회 학술총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로고에 담길 우주청의 비전과 철학을 보여줄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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