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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레임덕' 가를 윤-한 극한 충돌, 김 여사 문자까지 소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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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새 당대표를 선출하는 7·23 전당대회가 '김건희 여사 문자' 블랙홀에 빠졌다. 전대를 계기로 총선 패배 이후 보인 무기력증에서 벗어나는가 싶더니 김 여사가 지난 1월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한동훈 후보에게 보낸 명품백 대응 관련 텔레그램 메시지가 공개되면서 당권 후보들이 연일 이를 두고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나경원·원희룡·윤상현 후보는 김 여사 문자를 한 후보를 겨냥한 공세 소재로 삼고 있다. 한 후보가 대국민 사과 의사를 밝힌 김 여사 문자를 무시함으로써 국면 전환 기회를 놓쳐 총선 참패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 후보 간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배신자론'과 맞닿아 있다. 반면 한 후보는 김 여사 문자가 "사과가 어렵다"는 취지였으며 윤 대통령도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반박한다. 한 후보 측은 두 사람(한 후보와 김 여사)만 알 수 있는 문자 내용이 6개월 후 언론에 공개된 배후와 경위에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이란 판세를 흔들려는 용산 또는 친윤석열계가 있다고 본다. 친윤계 지원을 받는 원 후보와 가장 격한 충돌을 벌이는 배경이다.
윤 대통령과 한 후보 관계에서 비롯된 이번 충돌은 총선 때 1, 2차 윤-한 충돌의 연장선상에 있다. 협력 관계에서 갈등 관계로 돌아선 미래 권력이 칩거 2개월여 만에 조기 복귀를 선언하면서 벌어진 권력투쟁이 본질이다. 이 과정에 등장한 김 여사 문자는 상대를 공격하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번에 공개된 다섯 개의 김 여사 문자는 1차 윤-한 충돌 전후(1월 15~25일)에 보낸 것이다. 김경율 비대위원의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1월 17일) 등으로 비대위 내 김 여사의 대국민 사과 요구가 있었고, 한 후보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대응"(1월 19일) 등으로 호응하던 시기였다. 이에 격노한 윤 대통령이 1월 21일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한 후보에게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한 1차 윤-한 충돌이 발생했다. 이틀 뒤인 1월 23일 한 후보는 충남 서천시장 화재 현장에서 윤 대통령에게 90도 인사와 악수를 했고 1월 29일엔 윤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하면서 갈등을 봉합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러나 김 여사 문자 내용 가운데 "대통령과 제 특검 문제로 불편하셨던 것 같다"(1월 15일), "대통령께서 지난일에 큰 소리로 역정을 내셔서 맘 상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1월 25일)는 대목은 김경율 발언 이전과 서천시장에서의 악수 이후에도 윤 대통령과 한 후보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김 여사의 대국민 사과 의향 여부를 둘러싼 해석은 엇갈리지만, '윤-한 갈등이 지속돼 왔다"는 사실은 분명히 드러난다.
여권에선 두 사람의 균열이 생긴 계기로 지난해 12월 19일 한 후보의 발언을 꼽는다. 한 후보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내정됐다는 말이 돌던 시기였다. 그는 야권이 주장하던 김 여사 특검법에 대해 "법 앞에 예외는 없다"면서도 "시기(총선)를 특정한 악법"이라고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조선일보 등은 '총선 후 김건희 특검 급부상'이라고 보도했고, 윤 대통령이 불쾌함을 보였다는 것이다.
2차 충돌은 한 후보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 인물인 이종섭 주호주대사의 즉시 귀국과 '언론인 회칼 테러' 발언을 한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불거졌다. 대통령실은 처음엔 거부했으나 이틀 뒤 이를 수용했다. 총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민심 악화를 우려해 대통령실이 양보하는 모습을 취한 것이다.
3차 윤-한 충돌은 1, 2차 때와 성격이 판이하다. ①우선 한 후보의 등판 과정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6일 한 후보를 여당 대표로 발탁했다. 총선을 지휘하는 수장으로 선거 경험이 전무한 법무부 장관을 발탁된 것 자체가 파격이다. 공천 등 과정에서 용산 의중을 반영하기 위한 '대리인' 으로 점찍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한 후보는 비례대표 공천 등을 두고 '찐윤' 이철규 의원과 사사건건 충돌했다. 한 후보는 전대를 앞두고 "총선 패장이 복귀할 명분이 없다"는 친윤 견제를 받았음에도 "국민 눈높이에 맞는 국민의힘을 만들겠다"며 출마를 결행했다.
②총선 패배 이후 차별화 의지도 선명해졌다. 1, 2차 윤-한 충돌 이후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 등에 반기를 들지 않으면서 어정쩡한 차별화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 전대 출마선언에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채 상병 특검법의 조건부 수용과 수평적 당정관계를 앞세웠다. 용산과 친윤이 불편한 심기를 보였지만, 한 후보는 "제가 배신하지 않아야 할 대상은 대한민국과 국민"이라고 응수했다. 국가와 국민이 대통령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말로, 여권에선 '가시 있는' 발언으로 읽혔다. 윤 대통령을 일약 대권주자 반열에 올린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조직에 충성할 뿐이다"는 발언과도 겹친다.
③이번 전대는 당정관계 주도권을 확실히 바꿀 수 있는 기회다. 윤 정부를 심판한 총선 결과와 여전히 낮은 윤 대통령 지지율로 당정관계의 중심축을 당으로 가져올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 한 후보가 수평적 당정관계를 강조하는 배경이다. 반면 윤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에 당에 대한 장악력까지 놓친다면 조기 레임덕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양측이 누가 향후 국정운영 주도권을 쥐느냐의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총선 여론을 의식했던 1, 2차 충돌과 달리 이제는 "양측이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부를 만큼 사생결단 식 대결을 펼치고 있다.
향후 김 여사 문자가 전대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당대표는 당원투표 80%와 역선택을 방지한 국민여론조사 20%를 합산해 선출한다.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 2위 간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김 여사 문자가 당심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느냐에 따라 전대 결과가 갈릴 수 있다. 적어도 한 후보의 과반 득표를 저지할 수 있다면, 반한동훈 세력을 모아 결선투표에서 뒤집기를 노릴 수 있다.
당원들의 반응은 계파 대리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친윤 주장처럼 검사 시절 김 여사와 문자를 수 백 개씩 주고받던 한 후보가 이제 와서 '사적 통로'라고 답하지 않는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반응도 있다. 반면 김 여사가 의지가 있었다면 한 후보의 답변 없이도 사과할 수 있었다는 반응도 만만치 않다. 2월 KBS 신년대담에서 윤 대통령이 "영부인이 박절하기 어렵다"고 한 것은 애초부터 사과 의지가 없지 않았냐는 주장이다.
여론조사에선 아직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 7, 8일 실시한 YTN·엠브레인리퍼블릭의 국민의힘 당대표 적합도 조사 결과,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에서 한 후보는 45%로 1위를 기록했다. 원 후보는 11%, 나 후보 8%, 윤 후보 1% 순이었다. 없다(27%), 잘 모름·무응답(8%) 비중도 적지 않았다. 국민의힘 지지층에 한정할 경우, 한 후보는 61%, 원 후보 14%, 나 후보 9%, 윤 후보 1%였다. 결선투표를 가정한 조사에서도 한 후보는 모든 후보를 대상으로 과반을 기록했다. 문자 공개 이전 실시한 한국갤럽(6월 25~27일) 조사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에서 한 후보는 38%, 나·원 후보 각각 15%, 윤 후보 4%였다. 국민의힘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한 후보는 55%, 원 후보 19%, 나 후보 14%, 윤 후보 3%였다.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갈등, 전대에서의 과열 경쟁은 보편적 정치 현상이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가 절반도 지나지 않은 시기의 권력투쟁에다 이례적으로 영부인까지 등판한 것은 예사롭지 않은 징후들이다. 여권에서도 "이번 내분으로 보수가 자멸할 수 있다"며 전대 이후 극심한 후유증을 우려하고 있다.
김 여사 문자 공개를 둘러싼 음모론이 난무하면서 김 여사의 이미지가 더 악화했다. 김 여사 문자가 한 후보의 당선을 저지할 수 있는 카드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당무 개입 등 '영부인 리스크'라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김 여사를 무조건 옹호하는 태도는 "김 여사만 치외법권적 지위를 누리느냐"며 특검법을 주장하는 야권에 빌미를 추가해 준 꼴이다. 향후 김 여사를 겨냥한 야당의 공세로 여당이 내분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윤-한 충돌에 따른 비전 대결 실종으로 보수의 자산으로 꼽혀온 정치인들의 상처도 불가피해졌다. 차기 대권 후보군에 속한 한 후보와 원 후보는 계파 싸움에만 몰두하는 모습만 남게 됐다. 보수 험지인 수도권에서 5선의 경륜을 자랑하는 나 후보와 윤 후보는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면서 차기 행보에도 먹구름이 낄 가능성이 있다.
*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 한국갤럽, 엠브레인리퍼블릭,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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