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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3년 만에 ‘개혁파 대통령’ 유턴... “근본적 변화는 힘들 듯”

입력
2024.07.07 18:0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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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제시키안, 결선 투표 득표율 54%… 강경파 꺾어
“핵합의 복원·히잡 단속 완화”… 대서방 관계 개선?
권력 서열 2위 한계... “앞길은 과제 산적한 지뢰밭”
“이슬람 권위주의에 제약 가할 것” 긍정적 전망도

이란의 개혁파 정치인으로 대통령 보궐선거에 출마한 마수드 페지시키안(오른쪽 세 번째) 후보가 5일 테헤란 서쪽 샤레 쿠드스에서 대선 결선 투표를 마치고 나오며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페지시키안 후보는 이날 득표율 54.7%를 기록해 최종 당선됐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이란의 개혁파 정치인으로 대통령 보궐선거에 출마한 마수드 페지시키안(오른쪽 세 번째) 후보가 5일 테헤란 서쪽 샤레 쿠드스에서 대선 결선 투표를 마치고 나오며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페지시키안 후보는 이날 득표율 54.7%를 기록해 최종 당선됐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이란 대통령 보궐선거에서 ‘개혁파 정치인’ 마수드 페제시키안(70) 후보가 최종 당선됐다. 경제난을 야기하고 국가폭력을 자행한 강경파 정권에 대해 누적된 대중의 불만이 표출된 결과다. 이란이 대(對)서방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오지만, 대통령은 ‘권력 서열 2위’라는 한계 탓에 이란 사회의 근본적 변화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선 결선 투표율 49.8%... 1차보다 10%p ↑

6일(현지 시간) 이란 관영 IRNA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실시된 대선 결선 투표 개표 결과, 페제시키안이 득표율 54.7%를 기록해 당선을 확정 지었다. 맞대결한 강경 보수 성향 사이드 잘릴리(59) 후보의 득표율은 44.3%에 그쳤다. 페제시키안은 국영 IRIB방송 인터뷰에서 “모든 이에게 우정의 손길을 뻗겠다”며 “국가 발전을 위해 모든 사람을 활용해야 한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이번 결선 투표의 투표율은 49.8%로, 지난달 28일 1차 투표(39.9%)보다는 10%포인트가량 높아졌다.

이 같은 대선 결과는 다소 의외로 평가된다. 지난 5월 19일 강경파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 사망(헬기 추락 사고)에 따라 치러진 이번 대선은 초반 때만 해도, 신정일치 국가인 이란의 권력 서열 1위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파’인 잘릴리가 우세할 것으로 비쳤다. 그러나 1차 투표에서 페제시키안이 ‘깜짝 1위’(득표율 42.5%)에 올랐고, 2005년 이후 19년 만에 실시된 대선 결선도 마찬가지였다.

이란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6일 테헤란에서 대선 결선 투표 개표 작업을 하고 있다. 테헤란=로이터 연합뉴스

이란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6일 테헤란에서 대선 결선 투표 개표 작업을 하고 있다. 테헤란=로이터 연합뉴스


이란, 3년 만에 '개혁 성향' 행정부

이로써 이란에서는 하산 로하니(재임 기간 2013년 8월~2021년 8월, 연임 포함) 대통령 집권기간에 이어, 3년 만에 다시 개혁 성향 행정부가 들어서게 됐다. 일각에서는 로하니 대통령을 ‘온건·중도’로만 분류해 “20년 만의 개혁파 대통령 선출”(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심장외과 의사 출신인 페제시키안은 2001~2005년 온건·개혁 성향 모하마드 하타미 정부에서 보건장관을 지냈다. 마즐리스(의회) 의원에 출마한 2008년부터 내리 5선을 했고, 2016년부터 4년간 제1부의장을 맡았다. 이번 대선 국면에서는 △경제 제재 완화를 통한 민생고 해결 △이란 핵합의(JCPOA) 복원 △서방과의 관계 개선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또 “히잡 단속을 완화하겠다”고 밝히며 2022년 ‘히잡 시위’ 이후 분노로 들끓었던 청년층·여성층의 표심도 얻었다.

물론 페제시키안이 이란 사회에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 최고 실권자인 ‘강경파’ 하메네이는 여전히 건재하다. 게다가 페제시키안도 신정체제에 순응하는 ‘온건파’라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 런던의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사남 바킬은 미국 CNN방송에 “이란 대통령 권한에는 한계가 있다”며 “페제시키안 당선이 당장 정책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미국 국무부도 “이번 선거로 이란이 근본적으로 방향을 바꾸거나 자국민 인권을 더 존중하게 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평가절하했다.

이란 대통령 보궐선거에 출마한 개혁파 정치인 마수드 페지시키안(가운데) 후보가 지난달 28일 테헤란에서 1차 투표를 마친 뒤 손가락으로 승리의 'V' 사인을 그려 보이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이란 대통령 보궐선거에 출마한 개혁파 정치인 마수드 페지시키안(가운데) 후보가 지난달 28일 테헤란에서 1차 투표를 마친 뒤 손가락으로 승리의 'V' 사인을 그려 보이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2인자 대통령도 국내·외교 정책 설정 가능"

하지만 ‘개혁파 대통령’의 의미가 분명히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란의 대통령도 국내·외교 정책을 설정할 수 있다는 게 분석가들의 견해”라고 전했다. 나데르 셰미 미 조지워싱턴대 중동학 교수는 NYT에 “개혁 지향적인 (이란) 대통령이 이슬람공화국의 권위주의에 어느 정도 제약을 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페제시키안의 앞길에 놓인 과제는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제재 완화를 통한 경제난 해소가 시급하다. 이란이 중심인 ‘저항의 축’과 이스라엘 간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는 중동 정세도 일촉즉발 상황이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 미국과의 관계 개선도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영국 가디언은 “(이란에) 변화를 가져오려는 페제시키안은 지뢰밭에 직면해 있다”고 짚었다.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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