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주 4일제는 죄가 없다

입력
2024.07.08 04:30
27면
구독

최창원(왼쪽 사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뉴시스 뉴스1

최창원(왼쪽 사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뉴시스 뉴스1

①지원차량은 제네시스 G90 대신 G80으로. ②해외 출장 갈 땐 비즈니스 대신 이코노미석으로. ③숙소도 평사원과 같은 등급으로.

최근 삼성, SK, 포스코 등 주요 대기업들이 임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겠다고 밝힌 내용들이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비용을 아끼고 긴장의 끈을 바짝 조이자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연봉의 10~20%를 반납하고 회사 주식을 임직원에게 무상으로 주는 제도를 없애 버리기도 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더 많이 출근하게 하거나 일하는 시간을 늘리는 곳들도 많다. 2000년 주 5일제 실시 이후 24년 만에 평일에 하던 경영전략회의를 토요일에 열고 토, 일 중 하루는 무조건 사무실에 나와야 한다.

이런 분위기를 직원들에게까지 전파하려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업무 추진비를 줄이는 것은 기본. 재택근무와 주 4일제 등 일하는 방법까지 손대려 하고 있다.

이차전지를 만드는 SK온의 이석희 대표이사(CEO)는 1일 비상 경영을 선언하면서 그 실천 방안으로 전체 구성원이 출퇴근 시간을 각자 결정하는 유연근무제도는 유지하되 재택보다는 사무실 근무를 원칙으로 삼기로 했다.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 주 4일 근무제를 택하는 다른 회사들은 계속 시행 여부를 살피고 있다는 소식이다.

SK텔레콤은 월 2회, 주 4일 일하는 '해피 프라이데이'를 운영 중이다. 이 회사는 2019년 국내 주요 기업 중 처음으로 매월 셋째 주 금요일을 휴무일로 지정했는데 2022년 월 2회로 늘렸다. 보통 연차 15일을 가진 직원이라면 유급으로 '연 39일'을 쉴 수 있는 셈이다. 같은 해 4월 SK하이닉스도 매월 셋째 주 금요일을 휴무로 했다. 이어 2023년 6월 삼성전자, 2024년 2월 포스코가 일부지만 주 4일 근무제를 채택했다. 그러면서 가정을 돌보고 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가족 친화적 기업, 충분히 쉬면서 일과 휴식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에 앞장서는 기업이라며 많이 자랑했다. 그런데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 주 4일제는 시기상조라며 되돌리려 하는 것이다. 재택근무는 몇몇 정보기술(IT) 기업 등이 활용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대유행을 계기로 대부분 기업들이 채택하는 등 더 이상 특별한 근무 형태가 아니다.

경영진은 위기 의식을 공유하자는 차원이라고 하지만 직원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더구나 현재 국내 기업들이 시행하는 주 4일제는 일하는 시간 자체가 줄어드는 게 아니다. 쉬는 날 일해야 하는 시간을 다른 날 더 일해서 채워야 한다. 일부에서 주 4일제 때문에 생산성이 낮아지고 기업 경쟁력도 약해질지 모른다고 주장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도리어 남들보다 먼저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는 평가와 함께 박수받으며 땄던 점수를 다 까먹을지 모른다. 인공지능(AI) 매칭 채용 콘텐츠 플랫폼 캐치가 취업준비생 1,751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복지로 꼽은 것이 주 4일제·4.5일제(43%)였다. 이어 유연근무제(20%), 재택근무(12%), 야근 강요 없음(7%), 수평 문화(6%), 자율 복장(5%) 등이 꼽혔다.

위기의 원인 진단부터 번지수가 틀렸고 상황 판단을 얼마나 한가하게 하고 있는가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꼴이다. 문제의 원인은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과 실행이지 주 4일제는 죄가 없다.





박상준 산업부장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