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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재생에너지가 원전의 100배 ... 원전 르네상스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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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르네상스요? 제가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떤 자료에서도 그런 현상은 보이지 않아요."
대기과학자 조천호(63)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올해 3월 공개한 '글로벌 원별 신규 발전 설비 용량' 그래프를 펼쳐보였다. 그리고 반문하듯 말을 이어갔다.
"보세요. 발전용량 기준으로 2023년 한 해 전 세계에 새롭게 지어진 원자력발전(원전)은 5.5GW(기가와트)입니다. 그런데 풍력은 117GW, 태양광은 무려 420GW예요. 보통 원전 1개를 1GW로 잡으니까 지난해 새 원전이 5.5개 만들어졌다면 원전 420개에 해당하는 태양광, 원전 117개에 해당하는 풍력 발전소가 만들어진 겁니다. 재생에너지 대 원전으로 따지자면 537 대 5.5, 그러니까 거의 100 대 1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재생에너지 르네상스지 어떻게 원전 르네상스입니까?"
조 전 원장을 만난 건 지난 1일 서울 중구 예장동 동아시아출판사의 남산책방. 맛보기 불볕더위 직후이자 장마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열린 '기후 재앙 긴급 강연'을 막 끝낸 참이었다. "어울리지도 않고 능력도 안 되고 원래부터 국회의원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며 손사래 치는 그가 '기후위기'라는 이슈를 붙들고 지난 4월 총선 때 녹색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한 배경이 짐작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그간 가격이 싼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해왔던 유럽 국가들이 고생했다. 에너지 부족, 물가 앙등 사태를 겪으면서 '에너지 독립' 의지를 불태우더니 이참에 원전을 더 짓겠다는 나라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조 전 원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 결과 원전 몇 개가 더 지어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부지 찾고 인허가 마치는 데 몇 년, 짓는 데 10년, 짓는 과정에서 비용 상승 등으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기도 하는 장기 프로젝트가 될 텐데 '르네상스'라 이름 붙일 만큼, 이제까지의 흐름을 뒤집을 만큼 그렇게 많이 지어질까요."
이어 조 전 원장은 지난해 10월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돼 화제를 모았던 논문 '태양광 에너지 전환의 추진력'(The momentum of the solar energy transition)도 꺼내 들었다. 기술발전, 시장규모 등을 감안했을 때 앞으로 어느 에너지원이 가장 싸질까를 추정해본 논문이다.
이 논문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원전이 가장 싼 에너지원인 국가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그리고 한국이다. 딱 3개국이다. 태양광은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서, 풍력은 북미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가장 싸다. 하지만 2027년쯤에는 태양광이 전 세계 거의 대부분 지역에서 가장 싼 에너지원이 되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만큼 투자 증가, 기술 혁신, 원가 하락의 사이클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조 전 원장은 다시 강조했다. "지금 재생에너지 분야는 관련 자료를 분기별로 확인해야 할 정도로 빠르게 바뀌고 있어요. 2~3년만 지나도 완전히 낡은 이야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원전을 새로 지을 십수 년 동안 차라리 태양광, 풍력발전 설비를 더 열심히 짓는 게 합리적 판단 아닐까요."
독일이 대표적이다. 탈원전으로 에너지 부문의 러시아 의존도를 높였다는 정치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선택은 여전히 재생에너지다. "1년에 재생에너지 설비를 14~15GW씩 늘려요. 재생에너지 비중이 50%를 넘겼다는 게 엊그제 같은데 한 달 전 자료를 보니 65% 수준까지 올라와 있더군요." 지금 다소 어렵다 해도 미래시장의 방향은 재생에너지라 보고 선제적 투자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의 6월 평균 최고기온이 처음으로 30도를 넘고, 이 때문에 여름을 6~8월이 아닌 5~9월로 늘린다는 얘기도 나온다. 기후위기는 뚜렷한데, 위기감이 되레 덜해진 느낌도 든다. 무감각, 혹은 익숙해졌달까.
"한국은 기후변동성이 큰 지역이라 그렇다. 사계절 뚜렷하고 여름과 겨울 온도 차가 거의 50도에 육박한다. 100년 치 기상 자료를 뒤져보면 웬만한 폭염, 호우 정도는 다 있다. 또 상대적으로 부유한 나라라서 부족한 건 돈 주고 사오면 되니까 지금 당장 어떤 큰 결핍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전 세계 온도가 1.1도 올랐고 이걸 1.5도 내로 막지 못하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거나, '기후인플레이션으로 식량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 큰 충격으로 와닿지 않은 측면이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라 계속 예외일 수는 없다."
-기후위기도 위기지만 요즘은 한국만 역주행한다는 느낌이다.
"지금 그 어떤 자료를 봐도 세계는 재생에너지로 가고 있다. 당장 2050년까지 기업들에 재생에너지 100%를 쓰라고 요구하는 RE100만 봐도 그렇다. 정치, 외교, 안보 등 상황에 따라 다소 변동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를 급격히 늘려야 한다는 점에선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데 한국만 딴소리를 한다. 아주 심각한 문제다."
-정부는 CF(카본프리)100, 원전 추가 건설, SMR(소형모듈원자로) 같은 걸 거론한다.
"세계 흐름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야기다. 대한민국이 지금 이만큼 먹고살게 된 건 세계 시장과 표준에 적극 따라붙어서 그런 거 아닌가. 그런데 에너지원 관점에서 한국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수준이 됐다. 우리나라 정책 결정자들은 원전에 관한 한 이상한 정치적 도그마에 빠진 것 같다. 원전을 완전히 없애거나 절대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전 세계 대세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똑똑히 보라는 거다."
-다른 건 놔두고서라도 SMR은 어떤가. 미국엔 빌 게이츠가 있고, 우리도 해보겠다고 한다.
"원전은 크면 클수록 효율과 경제성이 좋다. SMR은 작게 만드니까 효율도 떨어지고 가격도 비싸질 수밖에 없다. 빌 게이츠의 주장은 그러면 원전을 작게 모듈화해서 대량 생산하자는 거다. 대량 생산하면 가격이 떨어지고, 사용처 바로 옆에 두면 효율도 높아진다는 논리다. 문제는 그렇게 하려면 수만 개를 찍어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놓아드리듯' 설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땅도 넓고 인구가 상대적으로 분산되어 있다지만, 인구밀집도가 높은 한국에서 강남구에 한 대, 종로구에 한 대 이렇게 놓을 수 있을까. 또 이 모든 걸 성공한다 해도 재생에너지 가격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데 SMR 자체가 시장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개인적으론 굉장히 회의적이다."
-그러고 보면 재생에너지 시장을 놓쳐버린 게 아닌가 싶다.
"아까 자료에서 봤듯 발전 용량 규모로 보면 재생에너지는 이미 100배 더 큰 시장이다. 굉장히 안타까운 부분인데 '녹색성장'을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 이후 우리나라가 10년만 정말 꾸준히 투자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더구나 재생에너지는 한국처럼 제조업 강한 나라가 하기에 딱 알맞다. 한때 원전 많이 짓겠다던 중국이 태양광으로 방향을 틀어 세계 태양광 시장을 장악한 걸 보라. 지금은 우리가 되레 중국을 따라잡아야 할 상황이 됐다."
-기후위기라 하니 '위기'만 강조되고 '가능성'에 대한 얘기가 적다.
"분명 유리한 점이 있다. 재생에너지는 전국에 흩어져 운영되니까 그걸 유지, 보수, 관리해야 할 인력이 더 필요해진다. 한국이 2050 탄소중립에 성공한다면 200만 명의 추가 고용이 일어날 것이라는 그린피스 쪽 연구도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고용창출, 균형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해 안 나고 바람 안 불면 어떻게 하냐, 공장을 돌려야 하는 산업계가 재생에너지를 부담스러워하는 큰 이유로 꼽힌다.
"2021년 미국 예일대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전력 안정성을 비교 분석한 자료가 있다. 의외로 원전 중심 프랑스보다 재생에너지 중심 독일이 훨씬 더 안정적이었다는 평가다. 정전 사태도 독일이 훨씬 적고, 남는 전기를 더 자주 보내주는 쪽도 독일이다. 재생은 분산 에너지라 생산 단계에서 일정 정도 불안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네트워크 구성과 배터리 기술 같은 걸로 보완하면 된다. 일종의 '기술적 관리'의 문제이지 '에너지 원천'의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점은 태양광을 크게 늘린 독일은 우리나라보다 위도상으로 15도 더 북쪽에 있다. 독일에 비하자면 우리는 태양광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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