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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파시스트놈들, 본때를 보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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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 공화파의 패색이 짙던 1938년 4월, 북미신문연맹(NANA) 소속 종군기자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는 에브로(Ebro)강 강둑에서 공화국군과 국제여단 패잔병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그 강은 공화파-국제여단의 최종 방어 해자인 동시에 적진에서 후퇴하는 아군들의 장애물이기도 했다. 많은 병사들이 강을 건너지 못해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혔고 상당수는 강에 뛰어들어 익사했다. 미국 저널리스트 애덤 호크실드는 논픽션 ‘스페인 내전-우리가 그곳에 있었다’란 책에서, 현장에 있던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헤밍웨이의 삽화 몇 개를 소개했다.
-담요 한 장으로 젖은 몸을 가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두 사람이 청중의 전부였는데도 소설가의 악명 높은 사자후는 그칠 줄을 몰랐다.(…) 헤밍웨이가 강 건너편을 향해 그 큰 주먹을 휘두르며 “너희 파시스트 놈들, 아직 승리를 말하기는 일러. 네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말리라!”고 고함을 쳤다.(책에서)
헤밍웨이의 첫 전쟁은 1차 대전이었다. 일리노이주 오크파크(Oak Park)에서 태어나 고교 졸업 후 일간지 ‘캔자스시티 스타’의 기자가 된 그는 1914년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미국 정부가 공식 참전(1917.4)하기도 전에 프랑스 적십자사에 자원, 유럽전선에서 구급차를 몰았다. 1918년 7월 동맹국 오스트리아군에 맞서 연합국 이탈리아군이 대승을 거둔 이탈리아 피아브 델타(Piave delta) 전투 현장에도 그가 있었다.
전투가 소강 국면이던 1918년 7월 8일, 만 18세의 (당시엔 미국) 적십자 대원 헤밍웨이가 구급차에 초콜릿과 담배 등을 싣고 부대 곳곳을 누비고 다니던 중 갑자기 적의 박격포탄이 날아 들었다. 오른쪽 무릎과 허벅지, 머리와 손 등에 파편을 맞고 기절했던 그는 얼마 뒤 깨어나 두 다리를 잃고 쓰러진 병사 한 명을 업고 포탄 세례 속에서 응급처치실로 달렸다. 그는 그 일로 적십자 대원으로서 이탈리아 군사훈장(Croce de Guerra)을 받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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