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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두 번 울린 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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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는 그저 죄인처럼 서 있었다. 모진 찬바람에도 자신의 몸집만 한 커다란 피켓을 힘겹게 들고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피켓을 가득 채운 네 글자 '진상규명'. 앞날 창창한 내 아이가 어쩌다 서울 한복판 길거리에서 사람들 틈에 끼여 숨이 꺼져 갔고, 인파 통제에 나서야 할 경찰은 왜 수수방관했으며, '사람 다 죽게 생겼다'는 다급한 신고에도 대한민국 안전 시스템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또 그날 밤 살릴 수 있었던 159명을 죽음으로 기어이 몰아넣고도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국민을 지켜야 할 대통령은 왜 그렇게 모질게 '박절'하고 있는지. 엄마는 분노 가득한 침묵으로 묻고 있었다.
지난 1월 9일. 눈발이 휘날리던 그 아침 국회의사당역 출근길에 마주한 이태원 참사 피해 유족은 너무도 간절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신속한 통과를 위해 눈 내리는 혹한 속에서도 국회 주변 맨바닥을 엎드리며 이동하는 '오체투지'를 이어온 뒤였다. 야당 주도로 추진된 특별법을 대통령은 거부했다. 유족들은 용산 대통령실까지 또다시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특별법이 통과된 건 '그날' 이후 551일 만이었다. 국가의 응답은 왜 그토록 늦었던 것일까.
김진표 전 국회의장은 그 단초를 '대통령의 경도된 판단'에서 찾았다.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나눈 대화를 토대로 이태원 참사를 대통령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회고록에 언급했다. 김 전 의장은 극단적 유튜버들이 쏟아낼 법한 의혹과 주장들을 대통령이 놓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멋대로 왜곡했다"며 반발했지만 정작 무엇이, 어떻게 왜곡됐다는 것인지 답하지 않았다.
백번 양보해 모든 의혹을 점검한다는 취지였다고 하더라도, 이미 공식 조사에서 걸러진 비상식적인 참사 조작설 등 얼토당토않은 음모론을 국가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국정 운영의 주요 판단 근거로 삼는 건 결코 옳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극우 유튜버들이 근거 없는 혐오와 비방으로 희생자와 유족들을 모욕해왔던 걸 떠올리면, 참담하기 짝이 없다. 상처 받은 유족들은 당장 대통령 발언의 진위 확인과 그에 따른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그해 늦가을 시작된 비극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국가가 책임지지 못하고 있는 또 하나의 죽음이 있다. 지난여름, 결혼 10년 만에 시험관으로 어렵사리 얻은 늦둥이 외아들 채 상병이 군대에서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왔다. 세 찬 물살 속 발이 푹푹 꺼지는 늪지대에 구명조끼 없이 들어갔다 빠져나오지 못했다. 물이 싫어 수영도 꺼렸던 그는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해병대 정신으로 몸을 던졌지만, 정작 국가는 지켜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오리무중이다.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하겠느냐'는 대통령의 격노와 일련의 잘잘못을 따지느라 나라가 들썩이는 사이 책임져야 할 이들은 발뺌하기 바쁘다.
늦가을부터 겨울, 봄, 그리고 또 여름. 사계절을 한 바퀴씩 돌면서 지독히 반복되는 이 모든 죽음과 슬픔의 최종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대통령이다. 그럼에도 설익은 음모론과 격노로 또 한 번 희생자와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는 건 또 누군가. 대통령이다. 더 많은 국민을 잃기 전에,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을 가려야 한다. 원통한 죽음을 애써 외면하는 것은 2차 가해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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