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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선 "관광객 환영", 뒤에선 "돈 더 내라"… 헷갈리는 일본 외국인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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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엔화 약세 속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다. 일본은 겉으로는 이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일본 경기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 소중한 존재라서다. 하지만 다른 편에선 외국인 대상 추가 요금 부과 등 차별책도 증가하는 상황이다. 일본은 왜 이러는 걸까.
올해 연말이 되면 일본을 찾은 외국인 수는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정부관광국에 따르면 3~5월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은 석 달 연속 각 300만 명을 넘어섰다. 일본을 찾은 연간 외국인 관광객 수는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3,188만 명으로 가장 많았는데, 지금 추세라면 이를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기세를 유지해 2030년까지 연간 6,000만 명이 일본을 찾아 15조 엔(약 129조5,800억 원)을 쓰게 한다는 관광 산업 목표도 세웠다. 이제 관광업이 일본을 먹여 살리는 주요 산업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1~3월 비거주자 가계 직접 구매' 통계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이 석 달간 쓴 일본 국내 소비액은 7조2,000억 엔(약 62조1,300억 원)으로, 같은 기간 '반도체 등 전자 제품 수출액'(5조5,000억 엔, 약 47조4,600억 원)을 앞섰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이 기간 주요 품목 수출액과 비교하면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소비액은 자동차(17조3,000억 엔, 약 149조2,900억 원)의 뒤를 이었다"며 "일본의 주요 산업이 사물에서 서비스로 이동한 것"이라고 짚었다.
다만 울상을 짓고 있는 일본인도 많다. 관광객들로 오버투어리즘(관광 공해)이 갈수록 심각해져서다.
게다가 일본 사회를 덮친 고물가로 인해 일본인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더 느끼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과 일본인의 밥값 차이가 대표적이다. 평소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쿄 쓰키지시장에서는 한 끼에 2만 엔(약 17만2,600원)이 넘는 해산물 덮밥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너무 비싸 외국인만 먹는 음식이라며 도쿄 시민들은 '관광객 덮밥'이라고 부를 정도다.
반면 일본인들은 한 끼에 1,000엔(약 8,600원)을 넘어가는 대표적인 서민 음식 라멘값 상승에 놀라고 있다. 일본에서 라멘에는 '1,000엔의 벽'이라는 말이 뒤따른다. 아침부터 야식까지 언제든 빠르게 먹는 음식이기에 1,000엔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최근 물가 상승에 한 그릇당 1,000엔 넘게 받는 라멘집이 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요즘 라멘값이 너무 오른 것 아니냐"는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많은 일본인은 가뜩이나 물가로 삶이 팍팍한데, 외국인 관광객 때문에 쓰레기는 늘고 도로는 막히니 불편을 호소한다. '외국인들 때문에 못 살겠다'며 대가를 지불하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에 외국인에게 돈을 더 받겠다는 일본 지방자치단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환영한다는 일본 정부와는 정반대의 모습인 셈이다.
최근 효고현 히메지시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히메지성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입장료를 지금의 4배로 올리겠다는 안을 내놔서다. 기요모토 히데야스 히메지시장은 지난 16일 한 국제회의에서 "성인 1명당 1,000엔인 지금의 입장료를 외국인에게는 30달러, 시민에게는 5달러를 받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30달러는 엔화로 4,000엔(약 3만5,000원)이다. 일본인들도 SNS에서 "한 번에 4배를 올리는 것은 너무하지 않나"라며 비판할 정도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 오사카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관광세나 다름없는 '징수금 부과' 제도를 신설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이미 1박에 7,000엔 이상인 숙박시설에 머무르는 관광객에게 부과하는 '숙박세'가 있는데 별도의 관광세를 추가로 걷겠다고 해서다. 이후 '외국인 차별' 논란이 불거지면서 한발 물러섰지만 일본이 외국인 관광객을 대하는 대표 사례로 평가되기도 했다.
후지산으로 유명한 야마나시현은 외국인 관광객을 제한하겠다며 다음 달 1일부터 2,000엔의 입산 통행료를 받고, 하루 등산객 수도 4,000명으로 제한할 방침이다. 일본료칸협회는 외국인에게만 요금을 더 받는 '이중가격제'를 주장하고 있다.
외국인 차별 정책이라고 해도 대상이 관광객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짧게 머물다 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본이 자국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도 앞뒤가 다른 정책을 펴는 점이다.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 확대로 고질적인 인력난을 해결하겠다고 하면서 이들을 가려 받고 싶은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일본 국회는 지난 14일 '출입국 관리 및 난민 인정법(입관법)'을 개정해 기존 '외국인 기능 실습 제도' 대신 '외국인 육성 취업 노동 제도'를 2027년부터 신설하기로 했다. 기능 실습 제도는 개발도상국 인력이 일본에서 기술을 배우게 하는 '국제사회 공헌'이 취지였지만, 머물 수 있는 기간을 5년으로 제한해 인력난 해소에는 역부족이었다.
반면 육성 취업 제도는 일본의 외국인 인재 확보가 목적이다. 3년간 일정 수준의 기능을 보유하게 한 뒤 장기간 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특정 기능' 비자를 취득하게 해 '일본 인재'로 키운다는 취지다. 기술 숙련이 필요한 특정 기능 2호 분야로 비자를 취득하면 가족이 함께 체류할 수 있고 영주 자격도 얻을 수 있다.
일본 사회 내 우려도 있다. 외국인이 너무 많아져 사회적 갈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범죄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외국인이 많아진다는 지적이다. 일본 정부가 이에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영주권 박탈'이다. 2027년부터 세금이나 사회보험료를 지불하지 않거나 주거 침입, 상해 등 범죄를 저질렀을 때 영주 허가를 취소하는 것이 골자다. 지난해 기준 일본에 사는 외국인은 약 341만 명으로, 10년 이상 일본에 머문 영주자는 26%인 89만 명이다. 89만 명이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일본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휴대폰 요금이라도 밀리면 영주권이 취소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외국인 지원 비영리단체(NPO)인 '이주자와 연대하는 전국 네트워크'의 마루야마 유키 변호사는 아사히신문에 "영주권이 박탈되면 재류 기한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하고, 갱신이 불허될 수도 있다"며 "(외국인) 수용 확대와 영주권 취소는 상반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일본 정부와 국회는 질병이나 수입 감소로 세금을 낼 수 없는 부득이한 사정이 발생한 경우에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하지만 오히려 더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나온다. 코리아타운이 있는 도쿄 신주쿠상인연합회 정재욱 회장은 "'부득이한 사정'은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해석될 수 있어 상인들이 많이 불안해한다"며 "어떠한 잣대를 들이댈지 아무도 모르니 외국인들에게 불리한 정책이 많아질 것 같다"고 걱정했다.
외국인 차별 정책이라는 비판도 커졌다. 내국인도 세금은 안 낼 수 있는데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처벌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마루야마 변호사는 "일본인도 세금을 체납·미납한다. (체납을 이유로) 외국인의 재류 허가를 취소하는 것은 불공평한 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 야당은 '비인도적인 정책'인 만큼 늦게라도 관련 규정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미치시타 다이키 참의원(상원) 의원은 입관법 처리 과정에서 "외국인이 일본에 정착할 수 있게 배려해야 한다"며 "비인도적인 국가라는 인식이 강해지면 오히려 일본에 오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일 한국대사관은 동포 사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향후 동향을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사관 관계자는 "동포 사회에서 불안이 커지고 있는데 이러한 의견을 일본 정부에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 사는 영주자 중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약 7만6,00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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