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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조사위 '4년간 활동 마침표'…진상규명 보고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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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조사 논란을 빚은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조위)가 4년 6개월간 조사 활동을 마치고 24일 종합보고서를 공개했다.
진조위는 앞서 수차례 비판이 이어진 시민군의 무기고 첫 탈취 시점에 대해선 5월 21일 오전 9시가 아닌 오후 1시 30분으로 정정했고, 63대 소속 권모 일병의 사망사건과 관련해선 계엄군 장갑차에 의한 사망으로 기술했다. 다만 계엄군 발포 최종 명령권자, 행방불명자 주검 암매장 의혹 등의 진상은 결국 결론을 내지 못했다.
진조위는 이날 오후 서울 서울 중구 5·18조사위 대강당에서 종합보고서 발간 보고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종합보고서'를 공개했다. 또 대통령실과 국회에 종합보고서를 전달했다.
보고회의 최대 쟁점은 앞서 제기된 오류에 대한 수정 여부였다. 앞서 진조위는 보안사 자료인 '전남도경 상황일지'에 '나주 반남지서 무기가 5월 21일 오전 8시, 남평지서 무기가 5월 21일 오전 9시 피탈됐다'는 기록을 근거로 "무기고 피습 시간을 1980년 5월 21일 오후인지 오전인지 확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는 시위대의 선제 무장 주장과 직결되는 문제여서 논란이 일었다.
이번 공개된 보고서에선 시민군의 전남지역 무기고 첫 탈취 시점을 1980년 5월 21일 오후로 기술했다. 또 '전남도경 상황일지'에 대해선 "당시 경찰이 보유하지 않았던 '경찰 장갑차'가 피탈됐다는 등 상황에 맞지 않는 내용이 기재돼 있고, 당시 경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한자 표기와 다른 표기가 사용되는 등 조작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1980년 5월 21일 사망한 '권 일병을 숨지게 한 장갑차가 시위대의 것인지, 계엄군의 것인지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기존 개별 보고서 내용 역시 "계엄군 장갑차 후진 과정에서 권 일병이 사망하고 다른 1∼2명이 부상당했는데, 이 순간 계엄군 측의 발포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진조위 최대 핵심과제였던 집단 발포 책임자에 대한 규명은 끝내 빠졌다. 진조위는 "전두환이 당시 진압작전 계획의 수립과 실행을 비로스 관련된 주요 의사결정 과정의 중심에 있었다"면서도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이어 "현장 계엄군을 통한 진술조사를 토대로 발포 과정을 상향식으로 조사해 탄약 배분, 저격병 배치 등 의미 있는 진술을 확보했다"며 "그러나 그에 관련된 발포 경위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할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특히 진조위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 가족들이 거부한다는 이유로 대면 조사조차 실시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송선태 진조위 위원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방문 조사를 통보했으나, 대문을 열어주지 않아 조사할 수 없었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아들(노재현)에게 조사 의사를 밝혔으나 거부해 끝내 조사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암매장에 대해서도 "SNP방법에 의한 확인결과가 기존의 유전자 검사기법인 STR 조사를
통해 아닌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고 끝내 결론을 내지 못해 5ㆍ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주둔지에서 발굴된 유골들의 신원 규명이 미궁에 빠졌다.
한편 이날 오월정신지키기 범시도민대책위원회도 성명을 내고 "(진조위가) 4년 6개월 간 500억 원이 넘는 혈세를 쓰고도 왜곡과 부실로 얼룩된 직권조사보고서와 종합보고서를 냈다"며 "미완으로 끝난 5·18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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