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여름 극장가는 특별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이 8월 4일 개봉해 관객 800만 명을 모았다. 여름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다음 해 7월 27일 ‘괴물’이 개봉해 1,302만 명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 역대 흥행 1위에 올랐다. ‘괴물’ 이후 극장 흥행 법칙은 바뀌었다. 여름이 설과 추석 명절, 연말을 제치고 최고 성수기로 부상했다.
여름이 극장가 대목으로 부상할 만도 했다. 특히 7월 말에서 8월 초는 여름휴가가 집중되는 시기이다.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들이 전국 곳곳에 지점을 두면서 관객이 더위를 피해 시원하고 쾌적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마침 한국 영화는 부흥이라는 수식이 무색하지 않게 수작들이 잇달았다.
2007년 ‘화려한 휴가’와 ‘디 워’가 개봉해 쌍끌이로 여름 시장을 이끌며 ‘흥행은 여름’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여름은 ‘해운대’(2009)와 ‘도둑들‘(2012), ’명량‘(2014), ‘암살’ ‘베테랑’(2015), ‘부산행’(2016), ‘택시운전사‘(2017), ’신과함께: 인과 연‘(2018) 등 1,000만 영화의 산실이기도 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흥행판은 바뀌었다. 2022년 변화 조짐이 감지되더니 지난해에는 여름이 더 이상 관객이 가장 몰리는 시기가 아님을 보여줬다. 제작비 200억 원 안팎 영화 4편이 흥행 열전을 펼쳤으나 관객 반응은 차가웠다.
올해는 여느 여름과 분위기가 완연히 다르다. 덩치 작은 영화들이 8월 13일까지 1주일 간격으로 극장가에 선보인다. 제작비 200억 원이 넘는 영화는 아예 없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다음 달 12일 개봉)가 185억 원으로 가장 많다. 21일 선보인 ‘하이재킹’이 140억 원으로 규모 면에서 ‘탈출’ 뒤를 따르고 있다. ‘핸섬가이즈’와 ‘탈주’ ‘파일럿’ ‘빅토리’ ‘리볼버‘ ‘행복의 나라’는 제작비가 100억 원 남짓이거나 그 아래다.
매주 한국 영화가 새로 개봉하니 일각에서는 출혈경쟁으로 보기도 한다. 관객 입장에서는 골라보는 재미가 있는 건 분명하다. ’소문 난 한국 영화 볼거리 없다‘는 점을 지난 몇 년 동안 확인한 관객으로서는 작은 장르 영화에 더 마음이 끌릴 수도 있다.
눈에 띄는 시도가 있기도 하다. ‘하이재킹’은 수요일 또는 목요일 개봉하는 업계 관행을 깨고 금요일부터 관객과 만나고 있다. 당초 국내도 미국처럼 영화들이 금요일 개봉했으나 2000년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개봉일이 앞당겨졌다. 수요일 개봉으로 힘 빼기보다 주말 마케팅에 집중하겠다는 심사다. 멀티플렉스 체인 롯데시네마는 유튜브 인기 영상 ‘다큐 황은정: 스마트폰이 뭐길래’를 다음 달 3일 개봉한다. 유튜브 콘텐츠가 극장에서 정식 개봉하는 것은 ‘다큐 황은정’이 처음이다.
코로나19 대유행 3년은 짧은 기간이 아니다. 대중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동안 극장 밖에서도 즐길 거리가 많다는 걸 깨달았다. 대중의 눈높이는 높아지고 경쟁자들은 늘었으나 한국 영화가 코로나19 이전보다 재미있어졌다고 과연 자신할 수 있을까. 영화 관계자들조차 고개를 강하게 젓는다.
코로나19 이전 영화 관련 데이터는 이제 별 의미가 없다. 성수기와 비수기 구분은 모호해졌다. 예전에 유용했던 마케팅 방식이 무의미해지기도 했다. 올여름 시장 영화계의 달라진 접근 방식이 관객을 다시 불러 모으는 변화로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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