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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민물고기는 열대어... 쉽게 버린 생명에 느는 제2, 3의 '구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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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손가락만 한 물고기 한 마리가 재빠르게 물살을 가로지르자 그 뒤를 붉은 물결이 뒤따른다. 파랑과 초록을 오가는 수면을 깨뜨리는 것은 이질적이도록 화려한 색의 지느러미 한 줄기다. 흙, 이끼, 부유물처럼 무채색 일색의 세상이기에 더 눈에 띄는 이 작은 생명체들은 원래 국내에서 자생하지 않는 외래종 관상어 ‘구피’다. 대중적인 관상어로 꼽히는 구피는 자연 상태에서는 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열대어종이지만, 이날 기자가 본 구피는 남미의 하천이 아닌 대한민국 경기도의 한 공원 저수지 수면을 가르고 있었다.
“저 사람들 물고기 찍으러 왔나 보네.”
“저게 다 누가 와서 버리고 간 거 아녀…”
무심히 한 마디씩 던지는 지역 주민들에게는 한반도에서 헤엄치는 열대어 무리보다 카메라 든 취재진이 더 눈에 들어오는 듯했다. 이따금 저수지 주위 산책로를 걷다 열대어 무리를 관찰하는 주민들도 있었지만 공원을 찾은 주민들 대부분에게 ‘버려진 열대어가 바글바글한 풍경’은 이미 일상이었다.
이곳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열대어가 있는 풍경’을 찾을 수 있다. 각 지역 커뮤니티에는 ‘아이와 함께 구피를 잡으러 갈 건데, 000에 지금도 구피가 많이 있냐’는 질문이 주기적으로 올라온다. 주거 지역 인근 접근성이 좋은 도심 하천이나 공원의 인공저수지가 주된 지목 장소다. 기르던 물고기 개체수 조절에 실패하거나 사육을 포기한 개인들이 유기(방류)한 생명체들은 서식하기 좋은 환경에서 번식해 군집을 이루었다.
연중 따뜻한 수온이 유지될 경우 해를 넘겨 열대어들이 살아남기도 하는데, 인근 반도체 공장에서 더운 냉각수가 흘러나와 겨우내 구피 서식이 가능해진 경기도의 한 하천은 ‘구피천’으로 불리며 ‘명소’가 된 지 오래다. 취재진이 현장을 찾은 18일 밤에도 서너 무리의 시민들이 하천에 발을 담그고 열대어를 잡고 있었다.
공원 연못에 화사함을 불어넣어 주고, 농지 옆 하천을 체험활동 지역으로 변모시켜 주는 등 우리 주위에 자리 잡은 열대어는 그저 아름답게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형형색색의 관상어로 수놓인 수면은 작은 생명과 함께 버려진 도덕의 결과물이다.
구피천 일대 생태를 조사하는 관계자들은 "구피천이 유명해진 이후 유기 빈도가 늘었다"고 언급했다. 가장 유명한 구피천뿐만 아니라 매년 다른 도심 하천·저수지에서 열대어 목격담이 새로 나오는 것은, 누군가 계속해서 키우던 물고기를 버리고 있다는 뜻이다. 일부 수역에서는 구피보다 체급이 크고 덜 대중적인 어종의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파되기도 했다. 취재진 역시 이번 취재를 위해 찾은 공원 저수지를 2년 전에도 찾았는데,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외형의 구피들을 올해는 대량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제한된 수역에서만 서식이 가능한 특성상 아직까지 열대어에 의한 생태 교란 징조는 없지만, 방류는 지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생명 경시 풍조 확산에 기여함은 물론이고, 복잡한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은 누구도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영준 국립생태원 외래생물팀 선임연구원은 “겨울을 버티며 개체수를 늘릴 수 있는 종은 그리 많지 않은데, 그런 종들은 교란 생물로 지정·관리하고 있다”면서도 “외래 질병 확산에 대한 위험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박 연구원은 “(끝까지 책임지고) 키울 자신이 없다면 키우면 안 된다”는 인식 확산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키우기 시작했다면 성별 분리 사육 등을 통해 책임질 수 있는 수준의 개체수 관리 역시 필수다. 이미 개체수 조절에 실패했다면 "자연 환경에 풀어주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주변 수족관이나 업체 등에 인계해달라"고 당부했다.
시선을 사로잡는 이 광경, '이한호의 시사잡경'이 이번 회차를 끝으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더 좋은 사진과 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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