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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회귀” vs “명분일 뿐”… ‘지체 없이 군사원조’ 북러 합의, 미 전문가 평가는? [북러정상회담]

입력
2024.06.21 04:3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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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 강화 분명… 모호한 약속 한계
푸틴 믿는 김정은 도발 감행 가능성
“러, 북 도와 우크라 편든 미에 복수”

김정은(앞줄 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앞줄 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평양에서 북러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맺은 뒤 금수산영빈관 정원을 함께 산책하고 있다. 사진은 20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됐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앞줄 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앞줄 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평양에서 북러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맺은 뒤 금수산영빈관 정원을 함께 산책하고 있다. 사진은 20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됐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한편이 침공을 당해 전쟁 상태에 놓이면 다른 쪽은 지체 없이 군사 원조를 제공한다’는 북한과 러시아 간 합의 내용이 자동 군사 개입 형태로 작동할 가능성에 대한 미국 전문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회의적이었다. 모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측의 협력이 더 견고해질 것임은 분명하고, 그런 만큼 북한이 한층 대담해질 개연성이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북, 노동력 보내듯 러에 파병할 수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현지 시간)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체결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은 옛 소련 붕괴로 1990년대 중반 이후 지속돼 온 안보 조약 공백을 해소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19일 한국일보에 “의심할 여지 없는 냉전 시대 안전 보장의 부활”이라고 말했다.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도 CFR 홈페이지에서 “러시아와 북한 간에 점증하는 친밀성을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로를 위해 피를 흘릴 만큼 양측 신뢰가 두텁다고 보기는 아직 어렵다는 게 전문가 그룹 중론이다. 시드니 사일러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정보위원회(NIC) 북한담당관은 본보 인터뷰에서 “상호 방위 조항은 마치 방어 차원인 것처럼 묘사되는 러시아의 대(對)우크라이나 (침공) 행위를 북한이 돕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고안된 것 같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일방적 필요가 반영됐다는 뜻이다. 테리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외화벌이를 위해 노동력을 해외에 파견하듯 러시아군에 파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 북한이 미국이나 한국으로부터 공격당하는 시나리오가 상상하기 어렵거니와 설령 그런 일이 벌어져도 단지 조항만으로 북한을 위한 러시아의 군사 개입이 현실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한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안보석좌는 본보에 “지체 없는 군사 지원이라는 게 선언하기는 쉽지만 의미 있는 방식으로 수행되려면 손발을 맞추려는 수년간의 힘든 조정과 노력이 긴요하다”고 말했다. “외부에 보여 주기 위한 전략적 협정”이라고 그는 단언했다.

추상적인 약속 문구도 한계다. 퍼트리샤 김 브루킹스연구소 동아시아정책연구센터 연구원은 본보에 “가령 무엇이 ‘전쟁 상태’로 간주되는지, 상호 안보 조항이 발동되기 위해 충족돼야 하는 조건은 무엇인지 등이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이 20일 공개한 해당 조항(협정 4조)은 “쌍방 중 일방이 개별 국가 또는 여러 국가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한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이런 불확실성이 미국 등 서방을 조심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러 뒷배로 서방 비핵화 압박 견딜까

김정은(앞줄 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 방문 일정을 마치고 19일 밤 전용기로 평양을 떠나는 블라디미르 푸틴(앞줄 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공항에서 포옹하고 있다. 사진은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앞줄 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 방문 일정을 마치고 19일 밤 전용기로 평양을 떠나는 블라디미르 푸틴(앞줄 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공항에서 포옹하고 있다. 사진은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전문가들이 내용보다 더 걱정하는 것은 북한의 해석이다. 사일러 전 담당관은 “김정은이 자신의 모험주의를 푸틴이 지지할 것으로 믿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한 행동을 따라 할 가능성이 있는 데다, 서방의 비핵화 요구를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일도 가능하다”고 짚었다. 김 연구원도 “러시아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았다고 여긴 북한이 더 대담하게 도발을 감행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북한이 미국과 서유럽을 향한 러시아의 복수심 덕을 볼 수도 있다. 로버트 매닝 스팀슨센터 선임연구원은 본보에 “핵무기보다 첨단 원격 측정, 위성,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이 러시아가 북한에 제공할 만한 기술인데, 여기에는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무기를 공급해 자신을 방해한 서방에 앙갚음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말했다. 해리 카지아니스 미국국익센터(CNI) 국가안보 담당 선임국장도 본보 인터뷰에서 “만에 하나 한국전쟁이 재개된다면 북한에 방공 시스템과 첨단 탄도미사일, 훈련기 등을 보내는 러시아를 볼 수도 있을 것”이라며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일종의 보복”이라고 말했다.

북러 밀착에 대응해 한미일이 상응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차 석좌는 “북러 안보 협정에 대한 최선의 대응은 다음 달 미국 워싱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한미일 3국이 공동 안보 성명을 발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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