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부모님 돌아가셨는데 휴가도 못 쓰나요" 콜센터 노동자의 설움

입력
2024.06.20 17:10
수정
2024.06.20 17:24
10면
구독

KS한국고용정보 소속 콜센터 노동자들
"1월부터 교섭 요청했는데 회사 미루기만" 주장
KS한고 "원청별 조건 달라 교섭 분리해야" 반박

콜센터 용역업체인 KS한국고용정보 소속 상담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에 단체교섭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직원 5,000명 규모의 KS한고는 국민은행 국민카드 하나은행 쿠팡 배달의민족 등 유수 대기업의 콜센터 상담 업무를 위탁받아 운영 중이다. 최나실 기자

콜센터 용역업체인 KS한국고용정보 소속 상담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에 단체교섭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직원 5,000명 규모의 KS한고는 국민은행 국민카드 하나은행 쿠팡 배달의민족 등 유수 대기업의 콜센터 상담 업무를 위탁받아 운영 중이다. 최나실 기자

"콜센터 상담사가 아버지의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것만으로 마음이 아픈데 회사는 입사한 지 3개월이 안 돼 경조휴가를 쓸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망자가 된 아버지를 그냥 보낼 수 없어서 결국 결근 처리를 받고 상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 결근을 이유로 입사 3개월을 버티면 주는 정착 지원금(인센티브)도 받지 못했답니다. 가족들에게 돌아가실 거면 입사 3개월 이후에 돌아가시라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까."(김현주 공공운수노조 든든한콜센터지부 지부장)

국내 대표 콜센터 아웃소싱 기업인 KS한국고용정보(KS한고)의 상담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을 주장하며 회사에 단체교섭에 응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원청인 국민은행·국민카드·하나은행을 향해서도 KS한고에 대한 관리·감독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공공운수노조 든든한콜센터지부 소속 콜센터 노동자들은 20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1월부터 노조는 KS한고 측에 교섭을 하자는 공문을 수차례 발송했으나, 조건이 되지 않는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이유로 교섭을 계속 미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조합법에 따르면 노조 대표자와 단체교섭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거나 미루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로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5,000여 명 규모 콜센터 아웃소싱 업체인 KS한고는 국내 여러 대기업들의 콜센터 상담 업무를 외주 받아 수행한다. 이 중 노조가 있는 국민은행·국민카드·하나은행 소속 콜센터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회사에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다만 노조는 5개 지회가 한꺼번에 사측과 교섭을 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KS한고 측은 각 원청 기업마다 업무 위탁 조건이 다르고 근무 조건도 각기 다르기 때문에 지회마다 개별 협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KS한고 측은 "5월 말 교섭단위 분리 신청에 대해 (지방노동위원회) 각하 결정이 나왔으나 이유가 담긴 판정서는 한 달 뒤에야 송달된다"며 "아직 구체적인 판단 사유를 확인하지 못해 후속 대응을 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의도적으로 교섭을 지연시키는 게 아니라는 취지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 금융권 콜센터 상담사들이 지난해 10월 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총파업 돌입 결의대회에서 '진짜 사장이 책임져라! 상담사를 존중하고 처우를 개선하라'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당시 국민은행 하나은행 현대씨앤알 현대하이카손해사정 등 소속 콜센터 상담사 1500여 명은 사흘간 파업을 벌였다. 하상윤 기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 금융권 콜센터 상담사들이 지난해 10월 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총파업 돌입 결의대회에서 '진짜 사장이 책임져라! 상담사를 존중하고 처우를 개선하라'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당시 국민은행 하나은행 현대씨앤알 현대하이카손해사정 등 소속 콜센터 상담사 1500여 명은 사흘간 파업을 벌였다. 하상윤 기자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콜센터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 조건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하나은행 콜센터에서 8년째 상담사로 일해 온 현진아씨는 "콜센터 노동 환경은 여전히 쌍팔년도 근무 환경과 다를 게 없다"며 "노조가 생긴 곳은 그나마 괜찮지만 노조가 없는 곳은 여전히 연차 사용을 제한당하고, 최저임금이 오르면 다른 수당이 깎이고, 화장실을 가는 것도 확인할 정도로 강도 높은 이석(자리를 비움) 감시로 고통받고 있다"고 밝혔다. 또 국민은행 콜센터에서는 '하루 100콜'을 채우지 못하는 상담사에게 개별 면담을 예고했다고 전했다.

올해 2월 신설된 국민카드 콜센터 노조 소속 김현수씨는 "관리자 폭언, 실적 압박 등도 문제지만 조합원 1위 건의사항은 '연차를 자유롭게 쓰고 싶다'는 요구"라며 "상담사 가족이나 본인이 아파 출근이 어렵다고 해도 '일단 출근해 한 콜이라도 받고 조퇴하라'며 출근 강행을 요구하고 같은 날 연차 사용자가 2명 이상 겹치면 안 되고, 3명이 신청하면 가위바위보로 결정해 오라는 식"이라고 밝혔다. 유급 연차는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사항이지만 실상은 사용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김현주 지부장은 이달 30일자로 해고 통보를 받은 상황이다. 노조 활동을 하느라 콜센터 업무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측이 '무단 결근'으로 보고 해고한 것이다. 노조는 김 지부장이 노조 전임자로서 단체협약에 명시된 근로시간 면제(노조 활동에 대한 유급근로시간 인정) 제도를 정당하게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KS한고 측은 해당 단협은 이전 콜센터 용역업체와 맺었던 것이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최나실 기자

관련 이슈태그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