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집은 ‘사고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금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오늘 내가 먹은 음식, 내가 본 풍경은 내일의 내가 된다. 그렇기에 건강한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즐기는 일상은 탈 없이 튼튼한 인생을 만드는 첫 단추일 테다. 팔순을 바라보는 어머니와 중년이 된 딸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잊고 사는 단순한 진리를 집에 녹여냈다. 경기 양평 지평면의 작은 마을에 공방과 텃밭이 있는 집 '소소요요'(대지면적 808㎡, 연면적 198㎡)를 지은 이재희(76)·한남숙(45)씨 모녀 얘기다.
평생 서울에서 살던 모녀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절 지방 이주를 꿈꾸었다. "미술교육을 전공해 20년 넘게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살았어요. 코로나19가 심각했을 때 집합금지 명령으로 학원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되니 인생에 대한 회의가 밀려오더라고요. 언제까지 답답한 도시에서 깊이 숨 쉬지 못하며 살게 될까 불안했죠."(한남숙)
마침 같은 꿈을 꾸던 지인과 "이웃해서 살자"고 의기투합한 뒤로 본격적인 땅 찾기가 시작됐다. 평일에 온라인으로 서울 근교 땅을 검색하고 괜찮아 보이는 곳을 주말마다 찾아가기를 세 달쯤 했을 때, 운명의 땅을 만날 수 있었다. 나지막한 산의 비호 아래 자리한 마을, 멀리 펼쳐진 논밭, 집터에서 바라보이는 울창한 나무 군락의 조화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근처에 지인이 원하던 오솔길이 있었고 기차역 인근이라 남숙씨가 바라던 편리한 교통편까지 갖춘 곳이었다. 남숙씨는 이 풍경 속에 살포시 놓인 소담한 집을 상상했고 땅을 샀다.
땅을 장만했으니 집을 지어야 할 차례. 남숙씨는 "너와 딱 어울리는 건축가가 있다"는 지인의 소개로 윤민환(스튜디오 에스에이엠 건축사사무소 소장) 건축가를 만났다. "첫 미팅 때 알았어요. 제가 하는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셨거든요. 믿고 맡길 수 있겠구나 싶었죠."
도시 모녀의 시골 집 짓기
곧바로 난관에 봉착했다. 집터가 인근 도로보다 한참 낮은 땅이어서 집을 지으려면 흙을 다지는 성토 작업이 필요했던 것. 어머니 재희씨가 처음 땅을 본 날 우려했던 대로였다. "도로에서부터 점점 낮아지는 땅이었는데 여간해선 집을 못 짓겠다 싶더라고요. '절대 안 된다'고 만류했는데 땅에 완전히 꽂혀 있으니 들릴 리가 있나요." 일 년 반 동안 기울어진 땅을 3m 가까이 쌓아 올리고 나서야 온전한 집터가 완성됐다. 남숙씨는 "시골 지역이라 시공 업체를 구하기 어려워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고 업체가 바뀌면서 공사가 지연되는 등 애가 타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며 "겁 없이 덜컥 집 짓기를 결심한 대가를 호되게 치른 셈이지만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며 웃었다.
결국 2년 만에 완성된 집은 "하얀 박공지붕 집"이라는 단서 하나만으로 알아볼 수 있는 동네 랜드마크가 됐다. 멋 부린 데라곤 없는 새하얗고 단정한 조형 위로 세 개의 검은색 박공지붕을 얹었는데 크고 작은 오두막 세 채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듯한 모습이다. 수시로 손님을 맞으면서도 사생활을 지킬 수 있도록 고안한 디자인이다. 도예로 진로를 바꾼 딸은 공방에서 개인 작업과 원데이 수업을 하면서 그 공간을 벗어나면 누구와도 마주칠 일이 없는 집에 살고 싶었다. 윤 소장은 "'퍼블릭' '프라이빗' '기능'으로 성격을 구분하고 시각적으로도 달라 보였음 했다"며 "공적 공간인 가장 바깥 덩어리 1층엔 공방을, 2층엔 거실과 주방을 배치했고, 가운데 덩어리엔 화장실과 세탁실 등 기능적인 요소를,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가장 안쪽 덩어리 2층엔 침실을, 1층엔 게스트룸을 뒀다"고 설명했다.
집 옆으로는 231㎡(약 70평) 규모의 밭이 들어섰다. 어머니의 로망인 텃밭은 주택 면적을 넘어설 정도로 넓은데 설계 단계에서부터 위치와 크기, 사람과 농기구가 드나드는 길을 계획했다. 남숙씨는 "원래 오래된 단층 집이 있었는데 이 마을 토박이 90대 할머니가 그림과 밭농사를 소일거리 삼아 평생 살고 계셨다"며 "땅의 내력을 따라가듯 이제는 도예를 하면서 농사를 이어가게 됐다"며 웃었다.
하루가 행복해지는 '창멍'
안전하고 쾌적한 시골살이를 꿈꿨던 남숙씨는 도면 그리기에 참여할 정도로 원하는 주거 공간을 만드는 데 열심이었다. 현관, 옷장, 세탁실, 욕실, 침실로 이어지는 생활 동선을 원했고, 이웃에 사는 지인 집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가 편안하게 생활하도록 주방 상부장을 없애고, 욕조를 낮게 해달라고 하는 등 소소한 요소들도 놓치지 않았다. 이를 설계에 섬세하게 녹여내는 것은 윤 소장의 몫이었다. 그는 "집은 라이프스타일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건축주가 원하는 바가 분명할수록 좋은 설계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건축주의 요구 사항이 구석구석 배어들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공간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했다.
공간에 방점을 찍은 것은 유난히 많은 창이다. "채광과 통풍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매력적인 풍경을 공간의 주인이 제대로 누렸으면 했다"는 건축가의 말에 화답하듯 거실에 나란히 선 모녀가 "살아보니 정말 좋다"고 입을 모았다. 보통 거실은 남향에 배치하는데 소소요요는 거실이 북쪽을 바라보고 이 집에서 가장 큰 코너창도 같은 방향으로 나 있다. 남쪽 도로로부터 사생활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사철 풍경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북향이라 눈부시지 않아 불멍이나 물멍을 하듯 창을 오래 볼 수 있는데 언제나 마음이 편해진다. 넉넉하게 팔을 벌려 안아주는 것 같은 이곳의 분위기가 전달되는 것 같아 정말 좋다"는 남숙씨의 고백에 어머니도 말을 보탰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 안을 한 바퀴 빙 돌며 커튼을 걷어가며 창 너머를 구경해요. 이 집에 살면서 모든 계절이 좋아졌어요."
'호미' 들고 하는 산책, 어떤데?
오랜 시간 타인을 가르쳤던 남숙씨는 이제 자신을 위한 그릇을 빚는다. 문을 열고 나가면 어머니의 텃밭이 펼쳐지고 계단을 올라가면 아늑한 보금자리가 있는 공간에서 고요하게 자신을 마주하며 공방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택호이자 공방 이름인 소소요요(塐笑饒䍃)에는 '웃음을 빚는 넉넉한 오지 그릇'이라는 뜻이 담겼다. "10년 전 걷기 힘들 정도로 몸이 아팠을 때 도자기를 시작했는데 몰라보게 회복이 됐어요. 몸과 마음을 회복하게 했던 그 일을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입니다. 웃음이 넘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 집에 살면서부터 웃을 일이 많아졌다는 모녀. 특히 호미와 비닐봉지를 들고 걷는 산책길은 가장 설레는 시간이다. "15분이면 가는 오솔길을 한 시간 동안 걸어요. '달래가 자라고 있네', '으름꽃이 피었네' 하면서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을 아주 세세하게 보거든요. 주인 없는 먹거리를 발견하고 채집하는 재미도 쏠쏠해요. 얼마 전에 지천에 깔린 돼지감자를 캐서 장아찌를 담갔어요. 이 모든 게 공짜인데 안 웃을 수가 있나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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