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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와 내성천… 두 ‘사단장’의 책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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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은 필요할 때 군말 없이 죽어주도록 훈련되는 존재.”
내성천 거친 물살로 병사들을 보낸 해병대 장군이 내린 군인의 정의 되시겠다. 평시에 무리한 작전 중 순직한 부하를 두고 ‘군말 없이’란 말을 내뱉는 한국 해병1사단장. 비정한 그의 모습은, 전시에 부하들 목숨을 지키려고 상관 명령까지 어겼던 미국 해병1사단장을 반례로 떠올리게 한다. 1950년 겨울 한반도, 미군이 경험한 최악의 전장, 장진호 전투의 지휘관 올리버 스미스 소장(나중에 대장)이다.
그때 유엔군은 인천 상륙에 성공하고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쾌속 진군 중이었다. 중공군이 이미 한·만국경을 넘었지만, 한국전 내내 단 하룻밤도 한국에 머문 적 없던 맥아더는 일선부대의 중공군 목격 보고를 무시했다. 그는 “성탄절 전에 병사들을 돌려보내겠다”고 공언하며 정치를 하고 있었다. ‘맥아더 바라기’였던 10군단장 알몬드도 스미스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나 알몬드가 해병대를 밀어넣은 장진호엔, 맥아더가 오지 않을 거라던 중공군 1개 병단이 숨어 있었다. 12만 중공군은 미군을 향해 겹겹의 포위망을 친 채 조용히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고, 3만의 미군은 그걸 몰랐다. 맨 앞 해병1사단이 전멸할 수 있었던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불안했던 스미스는 명령불복종에 가깝도록 최대한 느리게 전진했다. 참전용사 마틴 러스의 책 ‘브레이크 아웃’을 보면, 해병1사단은 중공군 공격을 받기 전까지 하루 평균 1.5㎞씩 ‘달팽이 진격’을 했다. 요지마다 보급품을 꽉꽉 채웠고, 간이비행장까지 설치했다.
스미스의 이 신중한 진격은 숱한 나비효과를 낳았다. 스미스는 다중 포위에 갇힌 병력을 기어이 흥남까지 무사히 철수시킬 수 있었다. 1개 사단이 병단 전체에 맞서는 사이 군단의 다른 병력도 사지를 탈출했다. 그 유명한 흥남 철수는 스미스가 ‘후방으로 진격’하며 중공군 9병단 전투력을 꺾었기에 가능했다. 동부전선 유엔군은 전력을 유지했고, 나중에 리지웨이 8군사령관 부임 후 반격을 가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10군단이 괴멸적 타격을 입었더라면, 트루먼 행정부는 한반도를 포기하고 일본으로 철수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돌격만이 군인의 덕목은 아니다. 부하를 사지로 미는 알몬드 식 ‘적을 향한 용맹’보다, 부당한 명령에 맞서 부하를 구할 최적 솔루션을 찾는 스미스 식 ‘상관을 향한 용기’가 때론 더 값지다.
사단장은 병사에게 '죽도록 훈련되는 존재'라 했지만, 병사가 보기에 사단장은 신(神) 같은 존재다. ‘사단장은 산을 옮기고 물줄기를 바꾼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막강한 권능을 자랑한다. 하지만 산을 옮기는 권한을 가졌다면, 산이 무너져도 부하의 목숨을 구할 책임도 져야 한다. ‘권한과 책임의 균형’은 리더십의 요체이며, 리더십의 파멸은 둘 사이 불균형에서 시작된다. 최고의 리더십은 권한을 적절히 분배하고, 책임은 최종적으로 리더 자신이 지는 형태다. 하지만 우리가 이번에 본 리더들은, 권한은 독점하고 책임은 나누려고만 했다. 그런 책임 회피는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진다. 상관이 책임지지 않는 걸, 왜 뒤집어쓴단 말인가.
군통수권자와 군이 정말 걱정해야 할 것은 '지휘관 입건자 수'를 줄이는 게 아니다. 그들의 무책임과 비겁이 장병의 사기와 전군 전투력, 더 나아가 군에 대한 국민 신뢰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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