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리나라는 에너지 부족 국가이면서도 탄소중립과 에너지안보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이슈를 에너지 경제학의 관점에서 점검해본다.
온실가스 규제 묶인 민간회사
노후 화석연료 발전 대체하는
'민-민-관' 3각 협력 확대돼야
동주공제(同舟共濟)란 말이 있다.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는 뜻으로, 어려움을 함께 겪으며 서로 도움을 의미한다. '후한서(後漢書)' 주목전(朱穆傳)에서 인용된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의 일부인 세조실록에서도 발견된다.
요즘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해결하고 있는 정부 및 에너지기업의 모습을 보면 동주공제가 떠오른다. 특히 신설될 반도체 공장에 전기와 열을 공급하기 위한 정부, 민간기업, 공기업의 협력이 눈에 띈다. 경기 이천 및 충북 청주에 공장이 있는 SK하이닉스는 경기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반도체 생산 과정에는 전기뿐만 아니라 항온·항습을 위한 공정용 열도 대규모로 필요하다. 따라서 전기와 열을 확보하지 못하면 반도체 공장을 지을 수 없다.
전기는 한전을 통해 공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송전 및 배전망을 따로 구축해야 하는데 각종 인허가에 시간이 오래 걸려 반도체 공장 건설도 지연된다. 결국 반도체 클러스터 내에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 그래서 정부는 노후 석탄발전소 6개를 삼성전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내에 천연가스 발전소로 대체 건설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보일러를 클러스터 내에 설치해 열을 공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열생산 비용이 너무 높아 반도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둘째, 미세먼지의 원인인 질소산화물이 다량 배출된다. 따라서 효율을 높여 운영비용을 낮춤과 동시에 질소산화물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결국 탈질설비를 갖춰 질소산화물을 거의 배출하지 않는 천연가스 발전소를 클러스터 내에 빠른 시일 내에 건설,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면서도 열을 저렴하게 생산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안은 클러스터 내에 전기와 열을 동시에 생산하는 천연가스 열병합발전소를 짓는 것이다.
천연가스 열병합발전은 효율적이라 열과 전기를 따로 생산할 때에 비해 에너지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여 온실가스 및 질소산화물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화석연료인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발전소의 신규 건설을 불허하고 있다. 따라서 천연가스 열병합발전소 건설이 물 건너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동주공제 철학이 막판에 빛을 발했다. 정부, 민간기업, 공기업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 이달 초 해법을 마련했다. 천연가스 발전소의 총량이 늘지 않아 온실가스 배출을 늘리지 않는 방식을 정부가 유도한 것이다. 공기업인 중부발전은 보유 중인 노후 천연가스 발전소를 반도체 클러스터에 열병합발전으로 대체 건설해 전기와 열을 생산한다. 생산된 전기와 열은 각각 한전 및 SK E&S라는 민간기업을 통해 반도체 클러스터에 공급된다.
전기와 열을 확보하지 못해 고민이 깊었던 SK하이닉스는 한숨 돌렸고, 중부발전은 전기 및 열의 안정적 생산, 임직원 고용 유지라는 책무를 이행할 수 있게 됐다. SK E&S는 안정적이고 저렴한 열공급 수단을 확보했다.
이번 정부, 민간기업, 공기업의 협력을 통해 안정적 전기 공급, 저렴하고도 안정적인 열 공급을 통한 반도체 경쟁력 확보, 온실가스 배출 확대 억제 등을 달성할 수 있게 됐다. 시행 과정에서 풀어야 할 난제가 아직 남았지만, 이번 협력을 이끌어 낸 정부의 역할은 지속될 것이다.
현재 5개 발전공기업은 다수의 노후 석탄발전소 및 천연가스 발전소를 확보하고 있고, 여러 민간기업들은 발전소 유치를 원하고 있다. 또 난방열을 필요로 하는 신도시 및 공정용 열을 필요로 하는 산업단지들이 아직 더 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면서도 전기와 열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동주공제가 확대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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