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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젠새너티' 시대... 젠슨 황 한마디에 세계가 들썩인다

입력
2024.06.18 04: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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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밸리 이야기<20> 'AI 황제' 젠슨 황
게임 틈새시장 보고 세운 엔비디아
30여년 만 세계 시총 3위 기업 등극
창업자 황, '세계 10대 갑부' 눈앞에

편집자주

내로라하는 기술 대기업이 태동한 '혁신의 상징' 실리콘밸리. 다양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지만 거주민 중 흑인 비율은 2%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화려한 이름에 가려진 실리콘밸리의 다양한 얼굴을 '찐밸리 이야기'에서 만나 보세요.

지난 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포럼'에 참석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타이베이=연합뉴스

지난 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포럼'에 참석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타이베이=연합뉴스


이달 초 약 열흘간의 대만 방문 기간 내내 이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를 모았다. 그가 출몰하는 곳마다 기자들이 따라붙었고 구름인파가 몰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그를 봤다는 인증사진이 넘쳤다. 방송사들은 그가 어떤 식당을 찾아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보도했고, 이들 식당은 매출이 급증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의 부인과 자녀들에게까지 세간의 관심이 쏟아졌다.

그 역시 스포트라이트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매번 가던 길을 멈춰서 몰려드는 사진 촬영 요청에 응했고, 무엇을 먹었는지 같은 사소한 질문에도 기꺼이 답했다. 상의 가슴 부분에 사인을 해달라는 다소 당황스러운 요청도 그는 여유롭게 받아쳤다.

흡사 최정상 팝스타급 인기에 세계 언론은 그를 '기술계 테일러 스위프트'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과 '열광'을 뜻하는 영단어 '인새너티'(insanity)를 합친 '젠새너티'(Jensanity)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이름에 인새너티가 따라붙은 건 2012년 당시 뉴욕 닉스 소속 제러미 린이 미국프로농구(NBA)에서 이른바 황색 돌풍을 일으키며 '린새너티'라 불린 후 그가 처음이다. 엔비디아 창업 31년 만에 실리콘밸리 대표 스타로 부상한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의 얘기다.

대만을 방문 중인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지난달 30일 타이베이 야시장을 찾았다가 몰려든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타이베이=AFP CNA 연합뉴스

대만을 방문 중인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지난달 30일 타이베이 야시장을 찾았다가 몰려든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타이베이=AFP CNA 연합뉴스


지금은 명실상부 엔비디아의 시대다. 생성형 인공지능(AI) 학습·추론에 쓰이는 AI 칩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는 2022년 말 시작된 챗GPT 열풍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업계에선 엔비디아를 흔히 'AI 전쟁의 유일한 무기 공급상'에 빗댄다. 전쟁을 치르기 위해선 누구나 반드시 갖춰야 하는 무기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1년 동안 엔비디아 매출은 매 분기 시장의 예상치를 뛰어넘었고, 주가는 210% 가까이 뛰었다. 시가총액은 지난 3월 2조 달러(약 2,759조 원)를 돌파한 데 이어 불과 3개월 만인 이달 초 3조 달러(약 4,138조 원)까지 넘어섰다. 시총 3조 달러를 넘긴 기업이 엔비디아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 같은 성장 속도는 전례가 없다. 최근 엔비디아는 애플과 세계 시총 2위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는데,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시총 1위에 등극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대만 이민자 출신 미국인인 황은 엔비디아 창업자이자 현재도 회사를 이끌고 있는 CEO다. 엔비디아의 성공은 그를 떼어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지난해 초만 해도 세계 부호 순위에서 130위 안팎에 그쳤던 그는 이제 10대 갑부 대열 합류를 바라보고 있다. 그가 최근 대만을 방문했을 당시 받은 열렬한 영웅 대접은 지난 1년 사이 드라마틱하게 바뀐 그의 존재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지난 2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에서 관객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그는 이날도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색 가죽 재킷을 착용했다. 그는 아침마다 생각해야 할 거리를 하나라도 줄이려는 의도에서 늘 가죽 재킷을 착용한다고 한다. 타이베이=AP 연합뉴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지난 2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에서 관객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그는 이날도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색 가죽 재킷을 착용했다. 그는 아침마다 생각해야 할 거리를 하나라도 줄이려는 의도에서 늘 가죽 재킷을 착용한다고 한다. 타이베이=AP 연합뉴스


환영받지 못했던 쿠다, 엔비디아 전성기 열었다

엔비디아는 원래 게임 마니아였던 황이 틈새시장을 보고 시작한 회사다.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뒤 미국 반도체 기업 AMD에서 일하고 있던 그는 앞으로 컴퓨터가 처리해야 할 고품질 그래픽과 영상이 많아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를 빠르게 처리하는 장치가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고 1993년 엔비디아를 공동 창업했다. 지금은 고유명사가 된 그래픽처리장치(GPU)라는 세상에 없던 용어를 만들어낸 게 그가 설립한 엔비디아였다.

엔비디아의 성공이 황의 성공과 동일시되는 건 그의 선구안과 뚝심이 지금의 엔비디아를 일궜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게임용 GPU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면서도 늘 더 넓고 새로운 시장을 찾았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 학계에서 복잡한 연산을 빠르게 처리하는 연구를 하는 데 GPU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컴퓨터가 인간 수준의 능력을 내는 슈퍼컴퓨팅이 엔비디아의 GPU로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생각을 황은 그즈음 갖게 됐다고 한다. 슈퍼컴퓨터의 개념조차 익숙하지 않았을 때, 여기에 회사의 미래가 있을 것이란 판단을 내린 셈이다.


실리콘밸리에선 AI 시대 엔비디아의 지배력은 10년 전부터 차곡차곡 다져져 왔다고 본다. 2006년 출시한 '쿠다'가 그 시작이다. 당시만 해도 게임을 제외한 대부분 프로그램은 중앙처리장치(CPU)의 명령어 세트를 사용했다. 쿠다는 GPU를 활용해서 프로그래밍할 수 있도록 하는 소프트웨어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프로그래밍 언어만 익히면 누구라도 GPU로 프로그래밍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 GPU를 이용한 개발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춘 것이다.

쿠다가 처음부터 환영받은 건 아니었다. 엔비디아가 너무 먼 미래를 내다보고 위험한 투자를 했다는 게 시장의 주된 평가였다. 엔비디아가 쿠다 개발을 위해 쏟아부은 금액은 약 100억 달러(약 13조 원)였는데, 쿠다 자체는 무료로 제공됐다. 그마저도 처음엔 명확한 용처가 없어 이용자가 적었다. 쿠다 출시 이후 2008년 말까지 엔비디아 주가는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그러다 2012년 쿠다의 운명을 바꾸는 사건이 생겼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120만 장의 이미지를 카테고리별로 분류하는 이미지넷 챌린지가 스탠퍼드대에서 열렸는데, 이 대회에서 제프리 힌튼 토론토대 교수팀이 우승을 차지한 것이었다. 이들이 개발한 AI '알렉스넷'에 딥러닝 기술이 적용됐고, 엔비디아의 GPU와 쿠다를 통해 개발됐다는 게 알려지면서 단번에 쿠다는 AI 연구의 주류가 됐다. 엔비디아는 챗GPT 열풍의 최고 수혜자지만, 애초 엔비디아가 없었다면 챗GPT는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당시 힌튼 교수팀 일원 중 하나가 일리야 수츠케버였고, 그는 2015년 샘 올트먼과 함께 오픈AI를 공동 창업했다.

AI 붐 이후 전 세계의 AI 개발사들이 엔비디아 칩 수급에 목매는 상황이 되면서, AI 칩 자체 개발에 나서는 등 대책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동안 사실상 모든 AI 프로그램이 쿠다를 기반으로 개발됐고, 쿠다가 엔비디아 칩에서만 돌아간다는 것을 감안하면 엔비디아의 영향권을 빠르게 벗어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엔비디아와 황의 독주가 상당 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지난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간담회 중 '더 가까이에서 얘기하고 싶다'며 무대에서 내려와 질의를 받았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지난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간담회 중 '더 가까이에서 얘기하고 싶다'며 무대에서 내려와 질의를 받았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하루 14시간 일, 일하지 않을 때도 일 생각"

엔비디아를 3조 달러 기업으로 키운 데는 황 특유의 헌신적인 리더십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몸에 엔비디아 로고를 문신으로 새기고 있을 만큼 회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고, 하루 평균 14시간을 일에 쏟는다고 한다. 그는 "일하지 않을 때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일을 할 때는 일만 한다"며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일 생각을 해서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엔비디아 직원들을 인터뷰한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황은 모든 사업 관련 진행 상황을 꿰뚫고 있는데, 마치 잘 모르는 것처럼 부하 직원들에게 질문 공세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기 자신만큼 사안을 완벽하게 파악하게 하기 위한 의도다.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까다롭지만, 실리콘밸리에서 그와 함께 일해봤다는 사람들에게 황에 대해 물어보면 "기본적으로 달변가인 데다 유머 감각마저 갖춘 사람"이라고 답하는 이들이 많았다. 세계적 이목이 쏠렸던 지난 3월 엔비디아의 개발자 콘퍼런스에서도 황은 열렬히 환호하는 관객들을 향해 "이건 콘서트가 아니다"라는 농을 던지더니, 2시간 동안 혼자서만 행사를 이끌어가는 괴력을 보였다.

한 엔비디아 엔지니어는 "황이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건 그가 창업자로서 여전히 회사를 이끌며 역사를 새로 썼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라며 "이민자 출신이라는 점, 매사 진지한 모습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호감도를 키웠다"고 말했다. 통상 회사 규모가 커지면 CEO는 대외 노출을 줄이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황은 여전히 언론과 대중 앞에 자주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그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엔비디아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깔렸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 같은 CEO의 적극적인 행보가 자칫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는 최근 대만을 '국가'라고 칭해 대만을 자국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반발을 샀다. 그의 말 한마디가 주식시장의 흐름을 바꿔놓는 일도 종종 생기고 있다.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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