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와 주주 이익 가르자는 상법 개정, 법적 명료성 담보돼야

입력
2024.06.15 00:10
19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감원에서 상법 개정 등 이슈와 관련해 브리핑한 뒤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감원에서 상법 개정 등 이슈와 관련해 브리핑한 뒤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예정에 없던 브리핑까지 하며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도 포함하도록 하는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현행 상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로 한정하고 있어서 이사가 지배주주를 위해 소수주주의 뜻에 반하는 결정을 하기 쉽다는 게 이유다. 그 결과 기업 오너의 경영권 유지를 위한 편법 인수ㆍ합병(M&A)이나 ‘쪼개기 상장’ 등에 따른 주가 하락 위험이 우리 증시의 저평가 원인이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오너 이해나 회사 경영 편의에 따른 이사 결정이 소수주주에게 불의의 피해를 줄 수 있는 위험은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도 반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견제장치가 필요한 건 맞다. 다만 실제 기업 경영에서 대부분 결정은 회사와 주주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주장할 수 있는 만큼, 회사와 주주 이익을 가르는 명료한 잣대를 구축하기 어렵다. 따라서 상법 개정은 자칫 주주대표소송이나 이사 배임죄 처벌이 급증해 회사 경영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 원장은 비판을 의식한 듯, 브리핑에서 이사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도 포함시키되, 경영진 면책요건을 제도화하고, 나아가 배임죄를 폐지하거나 성립요건을 엄격히 하는 등의 보완책을 제시했다. 요컨대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 경영 판단을 한 경우, 민ㆍ형사상 면책을 제도화하면 경영 위축 등의 부작용이 줄어들 것이란 얘기다. 이 원장은 같은 맥락에서 배임죄 폐지까지 거론했으나, 그런 식이면 소수주주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의 취지 자체가 퇴색될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소수주주를 위한 상법 개정은 야당도 진작부터 주장해온 만큼, 개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 경우, 이사의 충실대상에 주주를 포함시키든 경영진 면책을 제도화하든, 가장 중요한 건 법적 명료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이사 결정에 대해 수시로 회사의 이익이냐 주주의 이익이냐를 따지는 다툼이 벌어진다면 결국 로펌 배만 불리는 짓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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