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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눈물 많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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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너무 열심히 살지 마. 입이 아프도록 말하잖아. 그렇게 애써봤자 우리 나이에 늘어나는 건 지병뿐이라고."
잘났다, 정말! 그래서 바둥거리며 살아도 늘 이 모양 이 꼬락서니인 나는 작년부터 혈압약을 먹고 있단다.
열심 혹은 열정과는 거리가 멀지만 매사 조바심 내기 일쑤인 나를 두고 친구는 입버릇처럼 충고했다. 혼자서 끙끙대며 일어나지도 않을 최악을 가정하지 말라고. 주변 상황을 내 손으로 챙겨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라고. 어차피 그 일 대부분은 사소할뿐더러 내가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 대신 처리할 문제들이라고.
그 말이 틀리지 않는다 쳐도 긴 시간 다져온 각자의 습성에는 그만의 사유와 연원이 있는 법이다. 주행성인 호주 육식 개미에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야행성 동물이 돼버린 토착 개구리들처럼. 낯선 존재가 내뿜는 매혹의 치명적 위험을 일찌감치 간파하고는 (인간은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기들만의 지역 사투리로 이성을 불러 서로 짝짓기하고 번식하는 새들처럼.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쉽지 않은 건 사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작년 가을 불쑥 찾아든 몹쓸 마음으로 인해 마늘을 심지 않고는 얼마나 후회를 했던가. 남의 마늘밭에 새순이 돋아나던 초봄부터 꽃대가 생기고 마늘종 뽑는 광경을 지켜보기까지 수시로 한숨을 토해냈었다. 사랑하는 내 친구여, 똑똑히 보거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순간 놓쳐버린 후에 남는 건 이렇듯 허망한 자책뿐이니… 다시는 마구니의 속삭임에 놀아나지 않으리라 몇 번을 다짐하는 사이 마늘 수확 철인 6월이 되었다.
지난 주말, 고향 집에 들른 나에게 엄마가 노끈으로 깔끔하게 묶은 마늘 한 접을 내밀며 잘 챙겨 가라고 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자두 알만큼이나 크고 잘생긴 마늘. 직접 농사지은 몇 년 동안 내 몫으로는 한 번도 들여보지 못한 최상급이었다. "마늘 안 심은 거 알고 이장 집에서 세 접, 저 아래 영섭이 엄마가 두 접 가져오고, 오늘 아침에 또 윤미 엄마가 세 접을 들고 왔네. 올해 마늘을 어디서 사야 할까 고민했더니만, 김장철까지 걱정 안 해도 되겠어." 희미하게 웃으며 엄마가 까만 봉지 하나를 내게 더 건넸다. "그리고 이건 코끼리 마늘이라고, 일반 마늘보다는 향도 맛도 약한데 수프로 끓여 먹으면 좋다고 하더라." 봉지를 열어보니 내 주먹만큼 큰 마늘이 스무 개 남짓 들어 있었다.
갑작스러운 장폐색과 괴사로 인해 응급수술을 받으신 아버지 곁에서 사흘을 머물다 고향 집에 들른 참이었다. 구순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동안 불안과 초조, 슬픔과 안도, 연민과 고마움 사이를 널뛰기하다가 아버지가 중요한 고비를 넘기셨다는 의료진의 설명을 듣고는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집을 찾았다. 한데 마당 가에 나란히 널려 있는 마늘 여덟 접을 내려다보던 어느 순간 가슴속 한 곳에서 다시 또 회오리가 몰아치는 기분이었다.
"아이고야, 직접 농사지었으면 이렇게 좋은 놈들은 다 나눠주고 손톱같이 작은 쪼가리들만 우리 차지가 됐을 텐데. 게으름을 피운 게 오히려 이득이네, 엄마. 세상에 이런 셈법도 있구나." 나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렇게 말했고, 늙은 엄마는 말없이 내 등을 쓰다듬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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