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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없다는 집단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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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가봐라. 한국은 인종차별 양반이더라."
"우리나라처럼 외국인한테 잘해주는 국가도 없다."
"우리나라만큼 인종차별 덜한 곳이 어딨다고. 우리도 영국, 미국 등 선진국 가면 인종차별당하는데…."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다룬 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많이 달린다. 그러나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리가 인종차별을 심하게 한다고 본다. 믿고 싶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종 불평등이 심한 나라다. 2022년 미국 시사주간지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가 총 85개국 1만7,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인종 불평등이 심한 10개국을 발표했다. 한국은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카타르에 이어 4위 올랐다. 5∼10위에 오른 이스라엘, 러시아, 벨라루스, 루마니아, 카자흐스탄, 캄보디아보다 우리가 인종차별이 더 심한 나라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대한민국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주민 인종차별을 지적하고 근본적 제도개선을 촉구해왔으며,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도 "인종과 민족을 비롯한 여러 그룹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다"고 평가했다.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들도 인종차별이 심하다고 말한다. 세계일보가 2020년 국내 거주 외국인 20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10명 중 7명이 '한국인은 피부색에 따라 외국인을 차별한다'고 답했다. 가장 차별받는 인종이 누구냐는 질문에 흑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가장 적은 응답은 백인이었다. 외국인 전문인력을 대상으로 한 면접조사에서도 한국에 장기체류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로 외모로 인한 인종차별 문제를 꼽았다.
언론에는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않지만, 인종차별 사건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1. 한국에 10년째 사는 모로코인 결혼이주민 엘아비디 압둘 모리츠는 2023년 10월 새벽, 거리에서 택시를 타려는 친구와 대화를 하던 중 택시기사에 의해 "불법체류자 무슬림이 손님에게 시비를 걸고 있다"고 경찰에 신고당했다. 출동한 경찰은 반말과 함께 모리츠를 거세게 밀쳤고, 그에게 테이저건을 네 차례 쏘았다.
#2. 2024년 3월 우간다 출신의 흑인 남성 모시스는 이태원 클럽에서 입장 거부를 당했다. 백인들은 들여보내 줬으나, 그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3. 우즈베키스탄 출신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쿠르바노바 클라브리다는 2011년 9월 부산의 한 목욕탕에 들어가려다 출입을 거부당했다. 주인은 거부 이유로 사우나 물을 더럽힐 수 있고, 에이즈(AIDS) 문제도 있어서 출입하게 되면 한국인 손님들이 거부감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4. 2018년 귀화한 흑인 프로농구 선수 라건아(부산 KCC)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깜둥이"(nigger) 등 노골적 인종차별 메시지를 거의 매일 받는다고 호소했다.
이 사례들은 모두 그들이 '백인'이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인종차별 청정국가'라는 집단착각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확인이 필요하다. 미국 하버드대 토드 로즈 교수는 실제로 좋아하지 않지만 다수가 좋다고 하면 괜찮은 듯한 생각이 들거나, 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 이를 '집단착각'이라 명명했다. 인류는 집단에 영향받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집단의 선택이나 가치관을 무비판적으로 믿고 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누가 집단착각에 빠져 있는 걸까. 우리나라는 인종차별이 없다고 믿는 한국인들이? 아니면 한국은 인종주의 국가라고 지적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누가 맞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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