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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 땐 눈물을 끓여서 ‘눈물 차’를 마셔요...그러다 보면 웃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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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 중 빛나는 하나를 골라내기란 어렵지요.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으로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송지현 작가가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독서 자세 추구'를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일보>를 통해 책을 추천합니다.
얼마 전 친구와 동네 뒷산으로 산책을 나섰다. 며칠 울적했던 나를 친구가 끌고 나온 것이었다. 산 자체는 매우 낮아 짧은 코스가 예상됐지만, 집에서 산 입구까지 걸어가는 동안 이미 지쳐버렸다. 잠시 숨을 고를 장소를 찾았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구들과 의미를 알 수 없는 조형물들을 지나, 저 멀리 조그맣게 자리 잡은 벤치를 발견했다. 벤치 주변에는 책이 들어있는 나무 책장이 있었다. 꼭 학급문고같이 생겼다고 이야기하며 책을 구경했다. 책들은 역시나 시리즈 중 첫 권이 없거나 너무 낡거나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내가 교실에서 제일 사랑하는 공간은 교실 뒤편이었다. 교실 뒤편엔 커다란 게시판이 있었는데, 거기엔 친구들이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 그림들을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창과 가까이에 붙여진 그림들은 빛에 노출되어 색이 빨리 바랬다. 교실 창문을 등지고 복도로 난 문 쪽으로 걷다 보면 그 옆에 작게 학급문고가 놓여있었다. 그곳에서 동화책 ‘집에 있는 부엉이’를 만났다. 좋아하던 책이었는데도 이 책의 제목을 잊어서 꽤 오랫동안 찾아다녔다. 심심할 때마다 검색 창에 부엉이, 올빼미, 동화책을 검색하곤 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드디어 찾아내고야 말았다.
어릴 때 이 동화책에서 ‘눈물 차’라는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다. 오늘 밤엔 눈물 차를 끓여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부엉이가 슬픈 생각을 하며 실컷 운 뒤 눈물을 차로 끓여 맛있게 먹는다는 내용이다. 부엉이가 생각하는 슬픈 것들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다리가 부러진 의자들, 노랫말이 잊혀 부를 수 없는 노래들, 페이지가 찢어져 읽을 수 없는 책들, 태엽을 감아 줄 사람이 없어 멈춘 시계들, 모두가 잠들어 있어 아무도 보지 않는 아침들….’
어릴 적엔 이 부분이 너무 슬퍼서 읽고 또 읽으며 울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또 다른 모습의 내가 떠오른다. 어린 나는 이미 슬펐고, 그래서 슬프기 위해 이 부분을 읽고 또 읽은 거라고. 그러나 어른이 된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떤 날엔 걷잡을 수 없이 슬픈 생각만 떠오르고 멈출 수 없다.
숨을 고르고 친구와 산에 마저 올랐다. 우리가 산에서 내려올 때쯤엔 완전히 어두워져서 휴대폰 플래시를 켜서 앞을 비춰야만 했다. 동네 뒷산에서 조난하는 것 아니냐며 우리는 깔깔 웃었다. 내려와서는 친구와 맛집에 갔다. 친구와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면서 울적한 기분이 가신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문득 어린 내게 말해주고 싶어졌다.
걷잡을 수 없이 슬픈 생각만 떠오르는 날은 분명히 있다고. 그러나 슬픈 기분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고. 맛있는 차 한 잔을 마시는 순간 다시 행복한 기분이 될 수도 있다고. 교실 뒤편을 오래 서성이던 어린 나는 오늘처럼 별것 아닌 것에 웃을 수 있는 미래에 잘 도착하게 되었다고.
이 글을 쓰면서 ‘집에 있는 부엉이’에 대해 찾아보니 이젠 드라마(‘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도 나온 유명한 책이 되어 있었다. 주인공들은 부엉이처럼 우리도 눈물 차를 만들어 볼까, 이야기하며 슬픈 마음을 하나씩 꺼내본다고 한다. 그 드라마의 작가도 어렸을 적 이 책을 읽고 오래도록 마음속에 간직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괜히 함께 눈물 차를 만들어 마시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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