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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여자 앞에서 작아지는 지질한 동양 남자...그에게도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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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계 미국인 벤(저스틴 H. 민)은 매사 냉소적이다. 동거하는 여자친구 미코(앨리 마키)가 지인 영화에 호들갑 떤다며 핀잔을 주는 식이다. 그런 그에게 미코는 어느 날 인턴으로 일하기 위해 3개월 동안 뉴욕에 가 있겠다고 통보한다. 벤은 실망하는 척, 싫은 척하나 다른 여자를 만날 절호의 기회로 생각한다.
벤은 늘 정치적으로 올바른 척한다. 직업은 예술영화관 매니저다. 취미는 고전 영화 보기다. 영화를 전공했으나 대학이 좋은 영화 만드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생각에 자퇴했다. 벤은 진보 도시로 유명한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의 동양계 거주민다운 면모를 지녔다. 알고 보면 그는 속이 좁고 지질하며 속물이다. 포르노 본 사실을 미코에게 들켰을 때 사과하거나 계면쩍어 하기는커녕 궤변을 늘어놓는다.
벤은 미코가 뉴욕으로 떠나자 영화관 신입 여성 직원 어텀(타비 게빈슨)에게 접근한다. 직장상사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다. 그는 위계가 아닌 자신의 매력 때문에 어텀이 잘해준다고 착각한다.
벤은 오리엔탈리즘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백인 여성 사샤(데비 라이언)와의 데이트를 주변에 뻐긴다. 정치적 올바름은 벤에게 액세서리 같은 거다. 자신을 포장하거나 방어할 때는 잘 활용하면서도 자신의 욕망 앞에선 거추장스러워 한다.
벤은 뉴욕에 간 미코가 연락이 뜸하자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의심한다. 처음에는 새로운 연애를 하게 될 수 있다며 쾌재를 부르지만 자신의 연애 전선에 문제가 생기자 미코에 매달리려 한다. 그는 프랑스 에릭 로메르 감독과 홍상수 감독 영화들 속 남자들을 떠올리게 한다(그는 로메르 같은 감독이 되고 싶어 영화 공부를 했다). 이 영화의 원제 ‘Shortcomings’가 암시하듯 벤은 결점 많은 남자다.
벤은 미움받아 마땅한, 나쁜 남자일까. 오랜 친구인 한국계 앨리스(셰리 콜라)는 왜 위선적인 인물 벤을 감싸고 도는 걸까.
벤은 나쁜 면만 있는 건 아니다. 남들이라면 손사래 쳤을, 앨리스의 난처한 요구를 선뜻 들어준다. 그는 잘난 척, 외롭지 않은 척, 강한 척 행동하나 나약한 소수자에 불과하다. 앨리스는 벤의 처지와 속내를 잘 안다.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란 없다는 사실까지도.
벤은 어쩌면 우리의 거울과도 같은 인물일지 모른다. 공개적으로는 정의로운 척, 올바른 척하나 육체적, 물질적 욕망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말이다. 앨리스 덕에 벤은 깨닫는다. 자신이 말만 많고 실행력은 없으면서 남들 성과를 얕잡아 보는 미숙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고통스러운 깨달음을 거쳐 새 출발선에 선다. 저열함으로 관객에게 차가운 웃음을 여러 차례 안기던 남자는 비로소 따스한 마음을 갖게 된다.
미국 사회 소수인 동양인들을 스크린 중심에 내세운 점이 흥미롭다. 한국계 유명 배우인 랜들 박의 감독 데뷔작이다. 일본계 미국 작가 에이드리언 토미네의 동명 그래픽노블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동양계 미국 감독이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동양계 남자의 속내라서 공감할 점이 더 많다. 만약 백인이나 흑인 감독이 연출했다면 인종 비하 논란이 따를 수도 있었겠다. 동양계 미국인이 겪게 되는 웃기고도 서글픈 사연이 흥미롭다. 지난해 1월 선댄스영화제에서 첫 상영된 후 8월 미국에서 개봉했다. 한국 극장가에서는 소개되지 않았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평론가 85%, 시청자 85%
***한국일보 권장 지수: ★★★☆(★ 5개 만점, ☆ 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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