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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영역은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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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됐을 때 주변 사람들은 격려와 함께 이런저런 덕담을 해줬다. 그중엔 “특파원도 하고, 청와대 출입 기자도 해서 나중에 한자리해”라는 얘기가 더러 있었다. 사실 기자가 어떤 커리어 패스를 거치는지 잘 몰랐던 때였지만 “전 정치를 모르기도 하고,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아 청와대 같은 곳은 안 갈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학 학사를 받았지만 현실 정치엔 관심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와 비리 연루, 그리고 명분 없는 이합집산 탓일까. 지역구 의원이 누구고, 누가 당선된 건 문제라는 등의 주제는 나와 무관한 일이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을 때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이유도 그랬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 아니 정치인들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배경이 묘사될 때 ‘정치무관심족’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어가면서, 정치라는 것에 대한 인상이 바뀌긴 했다. 정치에 관심 없는 속에서 권력욕을 가진 사람들이 소위 ‘정치적’으로 행동해 권력을 잡고 사회를 후퇴시킬 수 있는지 그려 내는 걸 보고 정치가 필요악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랬기에 지금까지 정치인들을 취재하는 ‘정당팀’을 피해 다니며 출입처를 옮겨 다녔다. 그런데 정치는 어디에나 있었다. 교육 담당일 때는 국회 교문위, 국방 담당일 때는 국방위, 산업부 담당일 때는 산중위, 그리고 법조 출입일 때는 법사위 쪽을 취재하거나 협업을 하기도 했다. 각 출입처의 예산과 법안, 그리고 주요 현안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선 국회 측 취재는 필수불가결했다. 국회 정세가 일부 출입처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현실 정치가 싫은 건 여전했지만 친해진 의원 보좌관도 여럿 있고, 친분 있는 의원도 생기고 알고 지내던 사람이 의원이 되기도 했다. 각 출입처와 국회 정세와의 역학 관계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됐다. 정치 분야를 직접 취재하는 건 내키지 않지만 그들은 그들의 일을, 기자는 기자의 일을 하면 되는 거라고 마음먹게 됐다.
그럼에도 납득하기 쉽지 않은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다. 국회에서 여야 대치 등을 이유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들도 그렇고, 말 그대로 정치인들끼리 해결해야 할 일을 다른 분야로 넘겨서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그렇다. 국민들의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를 위해 21대 국회에서 해결하겠다던 법관정원법안은 특별검사 도입을 두고 여야가 다투다 폐기됐다. 22대 국회 개원 직후부터 빡빡해진 민생을 살리는 법안이 아니라 판사선출제나 법관탄핵제 같은 정치적인 법안이 우선 거론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검찰을 상대방을 잡는 도구로 써온 걸 당연하게 여기는 건 오래다.
서초동은 정치권이 해결하기 힘든 일을 들고 와 입맛에 맞는 결과를 받아내기 위한 곳이 아니다. 결과에 대해 승복하는 모습도 보기 힘들다. 윤준 서울고법원장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민감한 사안이 자꾸 법원으로 와서 법관들을 당혹하게 한다”며 “정치권에서 현명하게 해결했으면 한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리라.
전현직 대통령의 배우자 문제를 둘러싼 정치 이슈가 먹고사는 문제보다 중요한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정치권 푸닥거리를 서초동까지 끌고 가는 행태를 언제까지 봐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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