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의 '구토' 때문에 물리학의 꿈을 버렸어요"

입력
2024.06.27 1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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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서재]
박동수 사월의책 편집장이 뽑은 한 권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소설 '구토'

편집자주

로마시대 철학자 키케로는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몸과 같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책이 뭐길래, 어떤 사람들은 집의 방 한 칸을 통째로 책에 내어주는 걸까요. 서재가 품은 한 사람의 우주에 빠져 들어가 봅니다.


11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자택에서 박동수 편집장이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를 들어 보이고 있다. 고양=신용주 인턴기자

11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자택에서 박동수 편집장이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를 들어 보이고 있다. 고양=신용주 인턴기자

"저 개인적으론 당연히 이 책이죠." 박동수 사월의책 편집장은 자기 서가에서 망설임 없이 책을 하나 뽑았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 널리 알려진 이 책을 앙상하게 요약하자면, 글쓰기를 위해 어느 소도시로 내려간 주인공 로캉탱이 이 세계의 거대한 무의미 앞에서 구토 증세를 겪으며 그 이유를 찾으려는 내용이다.

"제가 원래 이과생이었어요. 물리를 좋아하고 곧잘 해서 물리학을 지망했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시를 거쳐 도 대항 물리 경시 대회에 나갔는데 떨어진 거죠. 그 즈음에 우연히 '구토'를 읽었는데 '답이 없는 세계'라는 설정 자체가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똑 떨어지는 답이 있는 물리학과 달리 이 세상이 무의미할 수 있고, 목적이 없을 수 있다고 보는 세계가 있다니.

그다음부터 철학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대학 전공도 문과로 틀었고 입학해서도 철학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한때 기자를 꿈꿨으나 그보다는 좀 더 긴 호흡을 위해 철학 출판사에 합류했다. 별 특별한 이유나 계산 같은 건 없었다. "알랭 바디우나 악셀 호네트의 책 같은 걸 낼 건데 같이 하자"라는 제안에 "어, 나도 좋아하는 철학자인데"라며 자연스레 결정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사르트르의 '구토'는 원래 '진리의 전설'이라는 제목의 철학 책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계속 출간을 거부당한 거죠. 그러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조언을 듣고서는 아예 소설로 확 바꿔서 쓴 건데, 그게 희한하게도 사르트르의 이름을 지금까지 남아 있게 한 겁니다."

이건 박 편집장의 문제의식 "'오늘의 철학'을 하고 싶다"는 생각과도 연결된다. "막상 대학 가서 철학을 공부해 보니 너무 철학만의 용어를 써서 철학만의 이슈를 다루더라고요.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우리 시대의 사람과 공유할 있는 그런 넓은 의미의 철학을 해보고 싶어요." 학계도 언론계도 아닌 '출판', 그것도 '철학 출판'을 지금껏 손에서 못 놓고, 앞으로도 놓고 싶지 않은 이유다.


조태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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