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김승민 큐레이터는 영국 왕립예술학교 박사로 서울, 런던, 뉴욕에서 기획사를 운영하며 600명이 넘는 작가들과 24개 도시에서 전시를 기획했다. 미술 시장의 모든 면을 다루는 칼럼을 통해 예술과 문화를 견인하고 수익도 창출하는 힘에 대한 인사이더 관점을 모색한다.
세기의 명작 앞에서 알몸으로 다리를 벌려 예술계의 이목을 이끌었던 여성 작가가 자신에게 성적 모욕을 줬던 기획자를 10년 만에 '미투'(Me too)로 응징했다.
퍼포먼스 아티스트이자 사진작가인 데보라 드 로베르티스(40·룩셈부르크)는 10년 전인 2014년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세상의 기원’(1866년)이란 작품 앞에서 성기를 노출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세상의 기원’은 성기의 짙은 음모를 적나라하게 그린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프랑스)의 작품으로, 자궁의 입구, 즉 세상의 근원을 보여주는 리얼리즘의 대표 작품이다. 이 작품 앞에서 드 로베르티스는 맨발에 짧은 황금색 드레스를 입고 다리를 벌린 채 6분 동안 정면을 응시한 것이다. 그는 ‘여성의 음부를 그리는 것은 예술이고, 보여주는 것은 왜 외설이냐'고 반문한다. 그는 2017년에도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레오나르도 다빈치) 앞에서 같은 퍼포먼스를 하다 체포됐다.
그런데 예술혼에 불타던 그가 돌연 성적 모욕 이슈를 들고나왔다. 최근 퐁피두-메츠센터에서 열린 ‘라캉, 전시: 예술이 정신분석과 만날 때’에 여성 두 명을 보내 쿠르베 작품에 빨간 글씨로 '미투(Me Too)라고 써 놓은 것이다. 과거 자신의 파격적 퍼포먼스를 기획했던 큐레이터를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흥미롭게도 앞서 언급한 ‘세상의 기원’은 정신분석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자크 라캉(1901~1981·프랑스)의 소유품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엔 더욱 파격적인 그림이었기에, 라캉은 늘 커튼으로 작품을 가려놓고, 비밀스럽게 작품을 보여줬다고 한다.
이 전시는 라캉과 심리학에 대한 미술 전시인 만큼, ‘세상의 기원’은 물론 ‘기원의 거울’(Mirror of the Origin)도 선보였다. 기원의 거울은 드 로베르티스의 성기 노출 퍼포먼스 당시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둔 것이다.
하지만 순항하던 전시는 막바지에 흔들렸다. 드 로베르티스의 계획하에 2명의 여성이 전시장에 들어가 ‘세상의 기원’과 ‘기원의 거울'에 “ME TOO”라고 쓰는가 하면, 유명 설치 미술가 아네트 메사제(1943~·프랑스) 작품을 절도까지 한 것이다. 다행히 쿠르베 작품은 유리로 보호돼 있었기에 작품 손상은 없었지만, 강렬한 주홍 글씨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남성에 대한 고발처럼 쇼킹하다.
역사가 어떻게 판단할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음부를 드러내는 행위예술은 드 로베르티스가 처음이 아니다. 발리 엑스포트(1940~·오스트리아)는 ‘액션 팬츠: 생식기 패닉’(1968년)에서 앞 부분이 제거된 바지와 가죽 재킷을 입은 채 뮌헨의 예술 영화관에 들어가 좌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 사이를 거닐었다. 노출된 그의 음부는 관객 눈높이에 맞춰져 있어 관객이 도저히 피할 수 없도록 했다. 화면 속 수동적인 이미지 대신 '실제 여성'과 소통하란 도전이고, 당시의 소비주의와 기술 사회에 대한 대담한 페미니스트 성명이었다. 그의 작품은 현재 유명 갤러리에 의해 거래되고 있다.
그렇다면 드 로베르티스의 작품들 역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유명세를 타고 높은 작품 가격으로 이어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에 앞서 본질적인 걸 생각해야 한다. 미술산업이 점점 성숙해지고 탈세와 자금 세탁 등 부정적 이슈가 감소하고 있지만 논란을 일으킬 권력 구조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각자의 위상을 바탕으로 예술가에게 부당한 영향력과 권력을 남용하는 사례는 콜렉터, 비평가, 큐레이터 등에서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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