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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체제가 변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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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변칙 도발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의 심리전 양상은 묘하고, 새삼스럽기도 하다. 남북의 강경 대응 속에 윤석열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는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우리의 힘이 더 강해져야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고, 북한 동포들의 자유와 인권을 되찾는 일, 자유롭고 부강한 통일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일도 결국 우리가 더 강해져야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그렇다. 힘의 우위를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북한 체제 변화를 도모하겠다는 뜻을 담은 내용이다.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비판과 억지 의지에서 더 나아간 레토릭이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이 9일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선언하면서 ‘북한 정권에는 감내하기 힘들지라도, 북한의 군과 주민에게는 빛과 희망의 소식을 전해 줄 것’이라는 설명도 그 연장선으로 보인다. 이 정부의 과거 두 차례 현충일 추념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도전적 메시지다.
북한 동포의 자유와 인권 복원이 계산된 발언인지, 최근 남북 상황에 대응한 레토릭인지 분명하지 않다. 끊임없는 핵미사일 도발과 별개로 북한의 김정은은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남북관계가 더 이상 동족이나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관계, 전쟁 중인 두 교전국으로 규정했고, 남조선 평정을 운운하기도 했다. 선대 통일 기념물을 싹 없앴고, 4년 전엔 남한 대중문화 유입 유포 차단을 위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지난해엔 평양문화어보호법까지 만들었다. 북한 주민의 사상 이완 방증이다. 정부가 자제나 제재를 가할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 판단을 들어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뒷짐 지는 건 북한 내부 사정과 맞물린 정부의 대북 기조 변화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유와 인권의 확산은 실은 역량과 실효성 문제가 뒤따른다. 기본적으로 대외정책은 상대가 있다. 작용엔 반작용이 뒤따른다. 하물며 북한이다. 우리가 선진국 수준에 오른 경제력을 바탕으로 체제 경쟁 범주를 벗어난 지 오래지만 가치 전파는 차원이 다르다. 복음주의가 타 종교의 반발을 부르듯 북한의 군사적 모험주의 위험까지 압도할 역량을 갖췄느냐가 문제로 남는다.
남북대결과 긴장, 포용과 평화공존이라는 냉온탕은 박정희 정권에도 있었고 분단시기 동서독이 그러했듯이 민주화 이후엔 정권교체마다 부침을 반복해 왔다. 북한에 대한 자유와 인권 확산이 종교적 소명처럼 뿌리내릴 수 없는 지금 정치 구조에선 그 당위성과 무관하게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가 그 기조를 밀어붙이는 데 따른 안보적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지 국민적 공감대도 문제다. 통일 필요성에 부정적 인식이 높아지고 분단 상황 유지가 좋다는 답변이 많아진 15년간의 국민 통일의식조사(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결과는 평화공존에 대한 짙어지는 국민 지향성을 시사한다.
6자 회담 등 기왕의 협상으로 보자면 체제와 안전보장이 북한의 최고 이익인 마당에 체제 변화의 실행은 한반도 긴장이라는 부작용만 낳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오히려 오물 풍선 살포나 대통령을 시정잡배 취급하는 험담에서 보듯이 북한을 정상 국가로 견인하는 전략이 시급해 보인다. 평화공존이 정상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일관된 대북 메시지가 중요하다. 누구 호주머니에 들어갈지도 모를 통행세(방북 비용)나 낭비하는 건 북한의 비정상화에 일조할 따름이다. 국제규범 등에 기초한 정상국가화의 초당적 공감대가 있지 않는 한 남북관계는 대결과 긴장완화의 다람쥐 쳇바퀴가 될 터다. 통일은 그다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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