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더위는 없다

입력
2024.06.19 20:30
27면

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지난해 7월 유럽연합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가 도식화한 태평양 해수 온도 다이어그램. 동태평양(가운데 오른쪽) 해수 기온이 평년보다 높다는 의미로 빨갛게 표시돼 있다. 엘니뇨의 시작을 의미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7월 유럽연합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가 도식화한 태평양 해수 온도 다이어그램. 동태평양(가운데 오른쪽) 해수 기온이 평년보다 높다는 의미로 빨갛게 표시돼 있다. 엘니뇨의 시작을 의미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격해진 날씨가 걱정이다. 우리 국민 10명 중 9명이 “현재, 기후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환경오염이 원인 중 하나라 어린 세대에게 미안하다. 나이가 어릴수록 기후에 따른 불편을 (오랫동안) 크게 겪을 테니까. 숲을 보호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등 할 수 있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지구의 기온 변화를 색깔로 표시한 미국 항공우주국 그래픽을 보면 위기가 눈앞임을 알 수 있다. 겨울이면 영하 50도 아래로 떨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 곳 시베리아. 눈 쌓인 평야, 오줌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얼어붙는 장면, 추위를 녹이려 보드카를 마시는 사람들이 떠오르는 곳. 그런 시베리아가 지도에 벌겋다 못해 시뻘겋게 표시돼 있다. 색깔이 붉을수록 지구 온도가 높다고 한다.

킬리만자로 정상(5,895미터)의 만년설도 사라지고 있다. 한여름에도 눈이 쌓여 ‘반짝이는 산’이라고 이름 붙은 곳. 1만1,700년이나 지속돼 온 이 설원이 사라지면, 우린 또 얼마나 뜨거운 계절과 싸워야 할까.

언론에선 ‘역대급’ 더위가 올 것이라며 잔뜩 겁을 준다. ‘역대급’이라는 말이 불편하다. 역대급은 ‘최고’ ‘최악’이라는 뜻으로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역대급 무대, 역대급 실업률, 역대급 한파···.

역대급은 표준말처럼 보이지만 인터넷상에서 유행한 신조어다. 역대는 대대로 이어 내려온 여러 대. 또는 그동안이라는 뜻의 명사다. 역대 대통령, 역대 전적, 역대 헌법처럼 활용할 수 있다. ‘-급’은 재벌급, 국보급, 전문가급 등과 같이 명사 뒤에 붙어 ‘그에 준하는’의 뜻을 더한다. 또 과장급, 국장급, 간부급처럼 ‘그 직급’을 뜻하기도 한다.

역대에 급을 붙이면 ‘대대로 이어 내려온 여러 대의 등급’ ‘그동안에 준하는’이라는 이상야릇한 뜻이 된다. 조어법엔 문제가 없지만 의미상 매우 부자연스럽다. 그러니 역대 최고의 무대, 역대 최악의 실업률, 역대 최악의 한파 등으로 표현해야 한다.

폭염과 함께 집중호우도 며칠간 지속될 것이다. 일기예보, 기상특보 등을 수시로 확인하고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 ‘몇 일’과 며칠을 두고, 고개를 갸웃대는 이가 있겠다. 우리말에 ‘몇 일’은 없다. 일정한 기간이든, 그달의 몇째 되는 날이든 며칠로 써야 한다. '몇 년 몇 월 며칠'처럼.

여름 내내 폭염과 집중호우가 기승을 부릴 게다. 탈 없이 건강하게 나려면 미리미리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은 호미로 막는 게 최선이다.



노경아 교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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