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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어진 봉안한 '봉업사지', 동아시아 해상교류 거점 '고성 동외동 유적' 사적 된다

입력
2024.06.07 14:13
수정
2024.06.0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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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7일 지정

국가유산청이 '안성 봉업사지'를 사적으로 지정했다고 7일 밝혔다. 사진은 사적으로 지정된 안성 봉업사지 진전 영역 발굴 조사 당시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국가유산청이 '안성 봉업사지'를 사적으로 지정했다고 7일 밝혔다. 사진은 사적으로 지정된 안성 봉업사지 진전 영역 발굴 조사 당시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고려 태조 왕건의 초상 어진을 모셨던 사찰 터와 고대 동아시아 해상교류 네트워크를 보여주는 유적이 사적으로 지정됐다.

국가유산청은 7일 사찰 '안성 봉업사지'와 삼한·삼국시대 동아시아 해상교류 거점 '고성 동외동 유적'을 각각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안성 봉업사지'는 고려 광종(949~975년) 때 왕권 강화를 위해 태조 왕건의 어진을 봉안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고려사'에 공민왕 12년(1363년) 왕이 봉업사에 들러 태조 왕건 어진을 알현한 기록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석탑만 남아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초기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어진을 봉안한 진전(眞殿)사찰 중 봉업사지처럼 고고학적으로 구조적 특징이 규명된 유적은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봉업사지 일대에서는 그간 총 5차례 발굴 조사가 이뤄졌는데, '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 주변에서 발견된 청동 향로와 청동 북에서는 '봉업사'라는 글자가 확인됐으며, 절의 중심 영역과 어진을 봉안한 영역 등도 파악됐다. 제작 연대, 사명, 지명, 인명 등 60종이 넘는 정보가 기록된 명문기와도 출토됐는데, 이는 봉업사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다.

국가유산청이 고성 동외동 유적을 사적으로 지정했다고 7일 밝혔다. 국가유산청 제공

국가유산청이 고성 동외동 유적을 사적으로 지정했다고 7일 밝혔다. 국가유산청 제공

'고성 동외동 유적'은 남해안 해양교통 요충지에 있어 삼한·삼국시대 고대 동아시아 해상교류 네트워크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삼한의 고자국에서 삼국의 소가야문화권까지 연결된 고성 지역의 생활문화 중심 유적으로, 수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집 자리, 조개무지, 의례와 제사터, 철과 철기 생산 등 당시 해양 거점집단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유구와 유물들이 확인된 바 있다.

특히, 이 시기는 한반도 남부 지역의 변한 소국들이 주변의 집단들을 통합하여 보다 큰 정치체로 발전하는 전환기로, 대외교류가 정치체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할 수 있는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어 학술적 가치가 크다. 2~3세기 외래계 유물로 중국 왕망의 신나라 화폐 '대천오십', 청동거울, 낙랑계 가락바퀴, 수레 부속구인 개궁모, 조문청동기 등을 비롯해 지배계층이 사용하는 청동 허리띠 고리 장식, 일본열도의 야요이계 토기, 광형동모 등이 발견됐다.

국가유산청은 "동외동 유적은 고성을 중심으로 한 남해안 지역의 정치체 성립과 발전을 보여주는 등 기원 전후부터 6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성장과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복합생활유적으로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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