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 AI 클론의 시대

입력
2024.06.08 05:00
18면
구독
미국 AI 스타트업 신디시아가 만든 AI 복제인간. 신디시아 홈페이지 캡처

미국 AI 스타트업 신디시아가 만든 AI 복제인간. 신디시아 홈페이지 캡처

영화 '터미네이터2'에 등장하는 가장 무서운 악당은 T-1000이라는 액체금속으로 된 인공지능(AI) 로봇이다. 무엇이든 원하는 형태로 탈바꿈하는 T-1000은 쌍둥이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변신해 상대를 경악하게 만든다. 공상과학(SF) 영화의 한 장면이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세계 최대 여행업체 익스피디아가 지난달 1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한 '익스플로어 24' 행사에서 '터미네이터2'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배리 딜러 익스피디아 회장은 AI의 미래를 그리며 앞으로 5년 내 분신 같은 AI 복제인간(클론)이 등장할 것이라고 봤다. 이렇게 되면 누구나 또 하나의 나, 즉 AI 클론을 비서처럼 부리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다른 내가 있다는 상상이 소름 끼칠 수도 있지만 딜러 회장은 긍정적으로 봤다. AI 클론이 대신 일하면 주 3일만 일해도 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남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여행, 레저 등에 쏟으며 여가 산업이 발달할 것이라는 기대다. 세계 최대 여행업체 대표다운 생각이다. 그는 상상 같은 현실이 곧 들이닥칠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익스피디아뿐만이 아니다. 미국 정부도 AI 클론을 현실로 본다. 미국 정부와 공공기관, 업계에서는 AI 클론과 공존하는 시대가 되면 산업과 일자리, 세금부터 복지제도까지 사람들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논의하고 있다.

이미 여러 기업과 인터넷 유명인사들도 AI 스타트업 신디시아, 델파이 등에서 개발한 AI 클론을 고객 상담이나 팬 미팅 등에 활용하고 있다. 브래드 피트, 리스 위더스푼 등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이 속한 미국의 대형 연예기획사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CAA)는 여러 AI 업체와 협업해 소속 배우들의 AI 클론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늙거나 죽지 않는 AI 배우가 스크린에 등장할 전망이다. 또 AI 스타트업 터치캐스트 대표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AI 클론을 내세워 투자 상담을 받기도 했다. 사실상 AI 클론이 일부 업무를 대신하는 셈이다.

미국 AI 스타트업 델파이의 창업자 다라 라제바르디언이 만든 자신의 AI 클론 챗봇이 이용자 질문에 답하는 화면. 라제바르디언 사이트 캡처

미국 AI 스타트업 델파이의 창업자 다라 라제바르디언이 만든 자신의 AI 클론 챗봇이 이용자 질문에 답하는 화면. 라제바르디언 사이트 캡처

딜러 회장의 AI 클론 시대 예고는 익스플로러 24 참석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국내 여행 스타트업 중 유일하게 이 자리에 참석한 트립비토즈의 정지하 대표는 "엄청난 충격이었다"고 전했다. 그렇게 빨리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데다 무엇이 얼마나 바뀔지 쉽게 예측이 힘들기 때문이다.

AI 클론 시대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피할 수 없는 인간과 AI의 융합이다. 싫든 좋든 그런 시대가 오는 게 분명하다면 우리도 미국처럼 그에 대비한 논의를 해야 한다. AI 클론의 등장으로 편한 점도 있겠지만 우려할 만한 일도 분명 발생할 것이다. AI 클론을 각종 범죄에 악용하는 경우부터 일이 잘못될 경우 책임 소재를 가리는 문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적용 등 얼핏 떠올려도 골치 아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AI 클론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긍정적 효과를 높이려면 골치 아프다고 미뤄둘 것이 아니라 정부와 학계, 업계 등 이해 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AI의 진흥과 규제, 윤리적 기준을 논하는 정책(거버넌스)을 준비해야 한다.

최연진 IT전문기자
대체텍스트
최연진IT전문기자

관련 이슈태그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