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서는 맛집이면 뭐해"... 야박한 은행 앞, 사장님은 '입구컷'

입력
2024.06.10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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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성'보다 '개인 신용도' 우선에
인터넷은행선 대안평가 활용 대출
시중은행은 "정확성 더 검증해야"

서울 시내 한 은행의 상담 창구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은행의 상담 창구 모습. 연합뉴스

서울에서 대형 체육 입시학원을 운영하는 30대 김모씨는 최근 학원을 확장 이전하면서 지인으로부터 목돈을 빌렸다. 은행 대출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학원이 사실상 폐쇄됐을 때 고정비용을 내며 버티느라 대부업체까지 찾았던 게 화근이었다. 뚝 떨어진 신용점수는 좀처럼 복구되지 않았고, 사업 특성상 매출이 성수기(입시철)에 몰리는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김씨는 “수강생이 눈에 띄게 늘고, 학원 운영도 안정됐지만 여전히 1금융권 대출은 꿈 같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맛집으로 소문난 한식당을 15년째 운영해 온 50대 김모씨는 올해 초 사업자 신용대출을 알아봤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다중 채무자인 데다, 신용점수도 700점대로 낮아 곤란하다는 게 시중은행 답변이었다. 최종적으로 김씨의 자금 문제를 해결해 준 인터넷전문은행 판단은 달랐다. 카카오뱅크는 김씨의 사업장 카드 매출 정보와 중소기업중앙회 납부 이력 등 추가 데이터를 분석해 김씨를 사업 역량이 뛰어난 개인사업자로 선별, 대출을 공급했다.

‘갚을 능력이 있는’ 자영업자마저 은행권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거 대출 이력과 낮은 개인 신용도 탓에 대출이 거절되거나, 한도가 충분히 나오지 않아서다. 결국 이자 부담이 큰 2, 3금융권으로 밀려나고, 이로 인해 신용점수는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사업장 상황과 업황을 적시에 정확하게 반영하는 신용평가 체계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은행권에서 개인사업자는 대출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소득이 일정하지 않고, 단기 자금 수요가 있을 때 카드 현금서비스 등 고금리 상품을 활용하는 경우가 잦아 신용점수가 낮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개인사업자는 비은행권 대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통계청의 ‘2022년 일자리행정통계(잠정)’에 따르면, 재작년 개인사업자 평균 대출(1억7,918만 원) 중 41.5%(7,444만 원)가 비은행 대출이었다. 대출액과 비은행권 비중 모두 임금근로자(5,115만 원 중 비은행 36.1%)를 상회한다.

2021·2022년 금융기관별 개인사업자 평균 대출. 그래픽=박구원 기자

2021·2022년 금융기관별 개인사업자 평균 대출. 그래픽=박구원 기자

문제는 사업 능력이 좋은 개인사업자까지 은행 대출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행 신용평가 체계는 정확한 원가와 임대료, 시간대별 매출, 급여액 등 사업 효율과 밀접한 비(非)금융 정보 반영이 부족하고, 카드사별 가맹점 매출 정보로부터 전체 매출액을 추정하는 등 정밀성도 떨어져 우량 사업자를 골라내기에 한계가 있다. 결국 사업장 자체에 대한 정보보다 사업을 책임지는 개인의 대출 이력, 연체 임박 여부 등 금융정보에 평가 가중치를 두면서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는 구조다.

2020년 8월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개인사업자 신용평가업(CB)’이 신설되자 자영업자 금융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신용평가 개선 작업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한국평가정보(KCS)가 전업 개인사업자 CB로 허가를 취득했고, 기존 대형 신용평가사와 여러 카드사도 겸업으로 승인을 받았다. 이후 평가모형 개발도 속속 이뤄졌지만, 실제 대출시장 진입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 중저신용자 포용을 목표로 출범한 인터넷은행이 자체 평가모형 개발과 대출 활용에 적극적이다. 지난달 카카오뱅크는 ‘소상공인 업종 특화 신용평가모형’ 도입 후 1년간 금융정보 기반 평가로 대출이 거절됐던 개인사업자 6명 중 1명이 역량 있는 사업자로 재평가돼 대출을 받았다는 자체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시중은행 중에선 신한은행이 사업장 매출과 공제부금 납부, 가맹점 운영 실적 정보 등을 반영한 소상공인 전용 대안신용평가모형을 최근 개발했다. 우리은행은 네이버파이낸셜과 협업한 포용금융 상품을 운영 중이다.

그럼에도 은행권에선 아직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 새로운 신용평가모델의 경쟁력과 정확성을 담보할 만큼 데이터가 축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 비금융 대안 정보를 활용한 신파일러(Thin Filer·금융 정보가 부족한 고객) 대출 상품을 내놨다가 연체율이 급등한 경험이 있다”며 “자영업은 특히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만큼 건전성 관련 리스크 검증이 제대로 이뤄져야 실용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개인사업자 신용평가가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비공개 간담회를 열어 개인사업자 CB 회사들의 고충을 청취하기도 했다. 당국 관계자는 “아직 사업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각사가 좋은 데이터를 많이 확보하고, 평가모형을 고도화하는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며 “추후 민간 금융기관이 원하는 수준까지 올라온다면 활용 역시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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