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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서 생맥주가 3600만리터 덜 팔리는 이유...'이것'의 쇠락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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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평론가가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1943년 6월 24일과 25일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이 편을 갈라 전투를 벌였다. 미국 땅도 아닌 영국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잉글랜드 북서부 랭커셔주의 뱀버 브리지에 주둔한 미군 가운데 흑인 장병들이 백인 헌병들에게 체포된 게 빌미였는데, 사정은 사실 꽤 복잡했다. 1940년대 미국에서는 여전히 흑백 인종 분리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백인들은 영국에서조차 같은 조치가 이루어지기를 원했다.
백인 장병들은 뱀버 브리지의 펍인 '예 올드 홉 인(Ye Olde Hob Inn)'에 흑백 분리 조치를 요구했다. 자신들만 펍을 쓸 심산이었지만 영국인들은 되레 '흑인만 입장 가능'이라고 써 붙임으로써 백인들을 약 올렸다. 이로 인해 시비가 붙었고 결국 백인 장병과 흑인 장병 및 영국인이 편을 갈라 총격전을 벌이는 비극이 벌어졌다. 그 결과 한 명이 죽고 일곱 명이 부상했다.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인종 폭동이 일어난 직후의 사건이었다.
영국인은 왜 흑인의 편을 들었을까. 펍은 모두를 위한 공간이라는 굳은 신념 때문이었다. 이처럼 오랜 세월 단순한 술집을 넘어 영국의 문화적 유산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켜 온 펍이 쇠락하고 있다. 2023년 한 해 동안 1,300곳의 펍이 문을 닫았으며 남아 있는 펍도 네 곳 중 세 곳이 이문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 2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6,400만 파인트(약 3,600만 리터)에 이르는 맥주가 덜 팔렸다.
마침 올해는 맥주를 판매하는 단위인 파인트가 생겨난 지 딱 200주년이다. 568.261㎖인 파인트는 미터법 도입 이후에도 펍에서 따라주는 생맥주를 위한 단위로 여태껏 살아남았다. 하지만 요즘처럼 맥주를 파는 펍의 세계가 조금씩 무너져 버리는 현실 속에서 파인트에도 존재의 위기가 닥쳐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퍼블릭 하우스(Public House)'의 줄임말인 펍(pub)은 이름 그대로 음주를 할 수 있는 공공장소를 의미한다. 용어 자체는 17세기 대중에 개방된 에일하우스나 태번(선술집), 여관 등을 가정집과 구분하려는 용도로 생겨났다. 이런 구분은 오늘날 상당 부분 유명무실해졌으나 '진짜 에일을 위한 소비자 모임'인 일명 캄라(CAMRA·Campaign for Real Ale)는 펍의 자격 조건으로 다음 네 가지를 내세운다. △회원제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고 △안주 없이도 생맥주나 사이더(사과 발효주)를 마실 수 있어야 하며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실내 공간을 한 군데는 갖추고 있어야 하고 △바에서 술을 직접 살 수 있어야 한다.
맥주, 그 가운데서도 진하고 더 향이 강한 에일을 즐기는 영국인에게는 음주의 역사가 곧 펍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들은 로마제국이 들어섰던 1세기 이전부터도 에일을 마셔 왔으니 펍의 역사가 2,000년이라고 볼 수도 있다. 펍의 본격적인 기원은 시저가 건설한 도로 시스템 로만 로드(Roman Road)와 함께 생겨났다. 바로 실내 상점인 타베르나(Taberna)다.
식료품을 비롯한 각종 재화를 팔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점인 타베르나가 선술집을 가리키는 영단어 '태번(Tavern)'으로 살아남았다. 5세기 로만 브리튼 시대가 막을 내리고 앵글로색슨족이 패권을 잡기 시작하면서 에일하우스가 생겨났고 이후 500년 동안 성장했다. 에일하우스는 각종 사회적 모임은 물론 험담이며 뒷담화 등을 위한 공공장소로서 펍의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중세에 이르러서는 여행자들이 수도원에서 숙식을 해결하곤 했는데, 차츰 수요가 증가하자 별도의 숙박업소가 독립해 성장했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로만 로드의 중간중간에 숙박업소가 생겨나기 시작했으니 이들을 여관(Inn)이라 불렀다. 태번이나 에일하우스 등과 비교했을 때 여관은 크게 두 가지 차이가 있었다. 숙박 기능이 강화됐고 교통수단인 말이나 나귀 등에게 마구간과 여물을 제공했다.
강조한 기능은 조금씩 달랐지만 많은 사람이 한데 모여 술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태번과 에일하우스, 여관이 동시다발적으로 세를 불려 나갔다. 조세를 위해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실시한 1577년 조사에 의하면 1만4,202곳의 에일하우스, 1,631곳의 여관, 329곳의 태번이 존재했다. 인구 187명당 한 곳의 펍이 존재하는 형국이었다.
근현대적 펍은 19세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해 약진했다. 당시 수적으로 가장 우세했었던 에일하우스는 가정집을 개조한 수준이라 질적으로 열악했다. 그런 가운데 산업혁명으로 많은 지역이 성장하고 인구가 밀집되자 술의 수요가 늘 수밖에 없었다. 이를 수용하고자 자본가들은 개인의 주택과는 확실하게 구분되는 건축 양식으로 펍을 새롭게 짓기 시작했다. 현존하는 펍들 또한 개보수를 거쳐 비슷한 양식으로 거듭났다.
외부 변화에 발맞춰 내부 변화도 이루어졌다.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은 펌프(또는 맥주 엔진)의 등장이었다. 네덜란드 발명가인 존 로프팅이 1688년 런던에서 개발한 맥주 엔진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생맥주 서빙 시스템이다. 맥주 통에 신축성이 있는 관을 연결하고 바에 있는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맥주가 잔으로 뿜어져 나온다. 지금이야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장비이지만 당시에는 맥주를 훨씬 더 빨리 낼 수 있다는 차원에서 획기적이었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펍이 번창하는 만큼 경쟁이 치열해지자 맥주 제조사들은 '하우스' 시스템을 고안해냈다. 펍을 아예 매입해 자사 브랜드의 맥주만 팔도록 특화시키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시스템이 고착되자 궁극적으로 유력 맥주 제조사들이 면허를 독과점하다시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결과 펍 산업에의 유입이 극도로 어려워졌다. 면허를 구하기 힘들었고 설사 구하더라도 특정 브랜드의 맥주만 팔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매입과 흡수합병 등이 이루어진 198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다. 이른바 '빅 식스(Big Six)'라 불리는 얼라이드, 배스, 커리지, 그랜드 메트로폴리탄, 스코티시앤드뉴캐슬, 위트브레드 브랜드의 맥주만 남았다. 독과점을 해소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1989년 맥주법을 제정했으나 실질적 효과는 없었다. 독점 공급이 유지되도록 빅 식스가 맥주법에 영향을 받지 않는 프랜차이즈 업체에 하우스 펍을 매각했기 때문이다.
지금껏 살펴봤듯 펍은 여러 술집과 숙박업소들을 아우르는 일종의 포괄적 용어이므로 세월이 흐르며 분화 또한 이루어졌다. 그 결과 초가지붕 등으로 목가적인 분위기를 강조한 컨트리 펍, 자동차 여행객을 위한 숙박까지 제공하는 로드하우스, 중세부터 로큰롤 음악까지 다양한 테마를 적용한 테마 펍 등이 등장한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종류는 가스트로펍(Gastropub)이다.
미식을 뜻하는 단어 가스트로노미(Gastronomy)에서 접두어를 따왔다는 데서 알 수 있듯 가스트로펍은 요리를 강조한 펍이다. 애초에 뱅어앤드매시(소시지와 으깬 감자), 피시앤드칩스 등이 펍 그럽(Pub Grub)이라는 용어로 따로 분류돼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영국이므로 펍 또한 음식이 맛있기는 어렵다. 2000년대 초반부터 출현한 가스트로펍은 이러한 점을 파고들어 펍의 다양한 주류와 섬세한 요리를 짝지어 큰 성공을 거두며 정착했다.
가스트로펍처럼 펍의 일부 곁가지들이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큰 그림을 보았을 때 사실 펍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쇠락세였다. 적어도 40여 년 전인 1982년부터 시작된 경향이었다. 변하는 세월과 경향에 맞출 생각 없이 전통을 고집한 게 가장 큰 패착이었으며 2007년의 실내 흡연 금지나 인구 변화, 심지어 가스트로펍의 등장 또한 전통 펍의 쇠락에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오늘도 영국의 전통 펍은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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