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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대기 선동열부터 한국 최초 에베레스트 정복까지... 한국일보 70년이 한국 스포츠에 남긴 족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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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1954년 창간 이래 굵직한 스포츠 대회를 꾸준히 주최하며 한국 스포츠사에 선명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중에서도 독자들의 뇌리에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대회는 1971년 시작한 봉황대기다. 전국 고교팀이 모두 참가할 수 있는 봉황대기는 52번의 대회를 거치는 동안 프로야구 스타들의 등용문 역할을 해왔다. 제1회 대회에서는 김재박(전 LG 감독)이 신생팀이었던 대광고를 이끌고 결승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키며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각인시켰다. 광주일고의 선동열(전 야구대표팀 감독)도 1980년 10회 대회 1회전에서 경기고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작성하며 전국구 고교 스타로 떠올랐다. 이 외에도 박찬호(KBO 국제홍보위원) 이승엽(두산 감독) 류현진(한화) 박병호(LG) 이정후(샌프란시스코) 등 한국을 대표하는 야구 스타들이 모두 봉황대기 무대를 밟았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만큼 봉황대기 입상에 성공한 선수들은 프로야구 무대에서도 긴 시간 각 구단의 중심 선수로 활약했다. 류지현(충암고·1988년 우승·MVP)과 봉중근(신일고·1997년 우승·최우수투수상)은 각각 LG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고, 양현종(광주동성고·2004년 우승·2006년 준우승·우수투수상·현 KIA) 이재학(대구고·2008년 우승·우수투수상·현 NC) 등은 여전히 현역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반상 위의 전쟁’에서도 숱한 명승부를 만들어냈다. 1969년 시작한 명인전은 두 차례의 휴지기를 거치는 등 부침도 있었지만, 2021년 SG배 한국일보 명인전으로 부활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명인’이란 칭호에 걸맞게 46번의 기전을 치르는 동안 정상에 선 기사는 단 10명뿐이다. 초대 우승자 조남철 9단을 비롯해 김인 서봉수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박영훈 최철한 신진서 신민준 9단까지 면면도 화려하다. 최다 우승자는 ‘돌부처’ 이창호(13회) 9단이고, 조훈현(12차례) 9단과 서봉수(7차례) 9단이 뒤를 잇고 있다. 특히 서봉수 9단이 프로입문 2년 만인 1972년 제4기 명인전에서 세운 종합기전 최단기간(1년 8개월) 타이틀 획득 기록은 5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한국일보는 또 독자들이 직접 체험하기 어려운 오지 정복 과정을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생생하게 보도했다. 1974년 1월 1일 자 사고를 통해 한국 최초 에베레스트 정복 목표를 밝혔고, 1977년 9월 15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설치한 취재본부에서 고 고상돈의 에베레스트 등정 소식을 급전했다. 1994년 창간 40주년을 맞아 꾸린 ‘94한국남극점탐험대(허영호 외 3명)’는 1993년 11월 28일 발대식을 마친 후 44일간 1,400㎞를 무보급·무휴식으로 걸은 끝에 남극점을 밟기도 했다.
창간 이듬해인 1955년부터 2016년까지 열린 ‘한반도 통일 대역전경주대회: 한라에서 백두까지(구 부산~서울 대역전경주대회)’는 참가 선수들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릴레이로 뛰는 획기적인 방식을 채택했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던 시절 시작한 이 대회는 오랜 시간 국민적 스포츠 이벤트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 밖에도 한국일보는 다변화하는 독자들의 관심사에 발맞춰 2022년부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메디힐·한국일보 챔피언십(총상금 10억 원)을 개최하는 등 외연 확장에 힘을 쏟고 있다. 박지영이 초대 대회와 올해 치러진 3회 대회에서 우승했고, 이주미가 2회 대회 정상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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