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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가 든든한 몸통 언론이 되어야 한다

입력
2024.06.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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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6월 9일 한국일보 창간호 1면(왼쪽)과 2015년 재창간(61주년) 1면

1954년 6월 9일 한국일보 창간호 1면(왼쪽)과 2015년 재창간(61주년) 1면


미국 언론의 '정파시대' 종식시킨 퓰리처
재창간 이후에도 '최고 신뢰'의 한국일보
'선진 한국' 위해 한국일보가 균형추 돼야

미국에서 대중지 시대를 연 이가 조지프 퓰리처다. 정론지(政論紙)가 판을 치고 있을 때, 그는 대중을 정치적 오염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그는 미국 남북전쟁에 북군 용병으로 참전했다가 퇴역한 헝가리 출신 이민자로, 영어조차 서툴렀다. 그러나 언론 지형을 바꾸는 데는 고매한 지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감각과 열정이면 충분했다. 그는 조그만 신문을 사들였다. 기자들에게 정치 문제에 매달리기보다는 대중에게 유익하고 대중이 흥미를 느낄 만한 기사를 개발하게 했다. 대중은 재빨리 호응했다. 퓰리처는 생전에 미국의 신문왕이 됐고, 퓰리처 덕에 미국 언론은 정파신문 시대의 긴 터널을 지나 대중신문 시대로 진입했다.

우리나라에서 대중신문 시대를 열고자 한 이가 장기영이다. 전쟁을 겪고 나서도 우리 언론계는 여당지와 야당지로 갈려 진흙탕 싸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장기영은 1954년 '태양신문'을 사들이고 제호를 바꿔 6월 9일 '한국일보' 창간호를 냈다.

이 신문은 창간 사설에서 "신문은 누구도 이용할 수 없고, 누구도 억제할 수 없다"고 천명했다. 항시 권력을 감시하고 민중을 대변할 것임을 다짐했다. 한국일보는 아울러 자유경제사회를 옹호하며, 리얼리즘에 입각한 상업신문의 길을 개척할 것임을 밝혔다. 그렇게 하여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신문 시대를 지향하는 새로운 신문이 등장한 것이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새로운 저널리즘을 구현하기 위해 솔선했다. 기자들은 정파적 편향성을 벗어나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한다는 기자정신에 충실하고자 했다. 가장 가까이에서 전쟁을 취재하려다 순직한 최병우가 한국일보 기자였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물론 더러 미흡함도 있고 때로 일탈도 있었다. 그러나 많은 기자의 노력이 쌓여 한국일보는 기자 양성 사관학교라는 평판을 굳혔고, 한국일보를 거쳐 간 많은 기자가 다른 언론사에 간부로 뽑혀가 한국 저널리즘 발전에 이바지했다.

언론 환경이 급변해 한국일보가 경영난에 봉착하자, 2015년 동화그룹이 이 신문을 인수했다. 동화그룹은 편집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며 한국일보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왔다. 한국일보는 정정당당, 춘추필법, 불편부당의 자세로, 정론지(政論紙)가 아닌 정론지(正論紙)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 노력이 대중의 눈에는 아직 두드러져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는 교수들 사이에서는 한국일보의 신뢰도가 압도적으로 가장 높다. 신문방송학과 학생들에게 한국일보는 신문과 방송을 통틀어 가장 들어가고 싶은 언론사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이런 평판은 머잖아 대중 사이에서도 빠르게 확산할 것이다.

여론시장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하나는 여론의 다양성이고, 다른 하나는 통합성이다. 여론은 좌에서 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야 하지만, 다양한 여론은 숙의 과정을 거쳐 적절한 시기에 통합을 이뤄야 한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언론사가 역할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 좌우에서 여러 날개 언론이 다양한 의사를 반영하되, 중간에서 몸통 언론이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

한국일보는 창간 초기부터 정치 면에 치중하기보다 경제나 사회문제를 적극적으로 보도해왔다. 정파성에 매몰돼 좌우 어느 정파를 대변하는 일은 금기로 여겨왔다. 이런 전통을 쌓은 한국일보가 몸통 언론으로서 여론시장의 든든한 균형추가 돼야 한다. 세계 10대 강국의 문턱에 서 있는 우리나라가 품격 있는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든든한 품격 언론, 몸통 언론이 있어야 한다. 창간 7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일보에 대한 기대는 이전의 어느 때보다 크다.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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