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의 인구 정책 보고서가 논란이다. 남녀 간 발달 속도를 고려해 여자아이를 한해 일찍 입학시켜 교제를 활성화하고, 은퇴 노인들을 해외로 이주시켜 생산가능인구 비중을 높이자고 한다. 국가주의적 발상에 성차별, 노인차별까지 문제투성이다. 연구원 개인 의견일 뿐이라는데, 발간 책자에 버젓이 실은 국책연구기관이 할 소리가 아니다.
문제의 보고서는 조세연의 정기간행물 ‘재정포럼 5월호’에 실린 29쪽 분량의 ‘생산가능인구 비중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이다. 보고서는 생산가능인구 비중 감소가 현재 인구 문제의 요체라고 진단하고 대응책을 제시한다.
가장 논란이 되는 대목은 저출산 해소를 위한 ‘교제 성공 지원 정책’이다. ‘교제 → 결혼 → 출산’의 단계를 위해 정부가 남녀 만남을 주선하거나 사교성을 개선해 주는 등의 방안을 제시한다. 특히 “남성의 발달 정도가 여성보다 느리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성들을 1년 조기 입학시키는 게 향후 적령기 남녀가 서로 매력을 더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젊은이들의 교제조차도 국가 정책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보는 발상이 위험하기 짝이 없다.
비혼 출산을 혼인 출산과 적대적으로 보는 것도 심각하다. “결혼하지 않는 교제를 지원하거나 동거를 조장하고 동거 출산을 지원하는 정책은 결혼과 결혼 출산을 저해한다”는 보고서의 주장은 프랑스 등 상당수 국가가 비혼 출산을 포용하는 것과는 정면 배치된다. 생산가능인구가 떠받치는 노인들을 줄이기 위해 해외로 내보내자는 제안은 더 충격적이다. “노령층을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하고 기후가 온화한 국가로 이주시키자”는 것인데 노인을 퇴물 취급하며 헌법이 보장하는 거주∙이전의 자유까지 훼손하는 주장 아닌가.
보고서 작성자만을 탓할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최근 조세연 산하에 저출산∙고령화 정책의 사후평가 업무를 맡게 될 인구정책평가센터를 개소했다. 그런 중책을 맡은 국책연구기관에서 아무런 거름장치 없이 이런 보고서가 나왔다는 게 어처구니없다. 이래 놓고 무슨 인구정책을 평가하겠다는 말인가. 이러니 아이 낳기가 더 싫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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