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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안 쓰는 중고 농기계, 아프리카에선 보물"... 수출길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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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한국에서 온 농기계들이에요.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건조기, 원판 쟁기... 모두 한국어로 설명이 적혀있죠? 이거야말로 아프리카에서 농사지으려면 꼭 필요한데, 우리도 딱 하나씩밖에 없어요. 정말 귀해요." 김충회(76) 가나 코피아센터 소장이 농기계를 연신 쓰다듬었다.
김 소장의 '귀하다'는 '너무 귀해 쓰지 못한다'는 의미로도 통한다. 다웨냐 지역에 있는 시범 생산단지와 논밭을 둘러봐도 농기계 엔진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농기계가 있어도, 이를 돌릴 수 있는 기름과 전기가 부족해서다.
이앙기가 있었다면 모를 옮겨 심는 일이 순식간에 가능하겠지만, 이곳에선 일일이 사람 손으로 모를 심고 있다. 써레질(울퉁불퉁한 논을 평탄화하는 작업)이 제대로 잘되지 않아 모가 골고루 잠기지 않은 곳도 군데군데 보였다. 그나마 가나는 농기계를 종류별로 1개씩 보유하고 있어, 농기계를 사고 싶어도 사지 못하는 아프리카 다른 나라에 비해 상황이 좋은 편이다.
아프리카는 농기계 사용 관련 통계가 없을 정도로, 농기계 기술 개발이 더딘 상황이다. 그나마 있는 소수의 농기계는 비싼 연료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부품 부족 문제로 수리가 되지 않아 방치되고 있었다. 기계를 이용한 대량 생산이 되지 않아 생산성이 크게 떨어지고, 다시 거액을 들여 농작물을 사 오는 악순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우리 정부가 'K라이스(쌀)벨트' 아프리카 사업국 중 세네갈과 처음으로 중고 농기계 지원 및 수리센터 구축 사업 협약 협의의사록(RD·Record of Discussion)을 체결했다. RD는 상대국 기관과 협력 내용에 대한 합의 사항을 담은 문서라, 세네갈에 우리 농기계가 진출할 수 있는 첫발을 뗀 셈이다.
세네갈 농축식량주권부(MASAE), 세네갈 강 유역개발 공사(SAED)도 농기계를 꼭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서 약 270㎞ 떨어진 생루이주 다가나군은 댐을 통해 농업용수를 공급받을 수 있어, 농기계를 이용한다면 쌀 대량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 RD가 체결됨에 따라 수행업체 선정, 설계 및 기자재 구입, 시공 등 절차가 끝나면 중고 트랙터(80~150마력) 50대, 트레일러 10대, 원판 쟁기 등 우리나라 기자재가 세네갈로 건너가게 된다. 농기계 수리센터도 지어질 계획이다.
한국 정부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 우선 포함시켜 국내 업체의 현지 진출 기반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세네갈 농기계식량주권부에 중고 농기계를 무상 지원한 뒤, 세네갈 정부에 소유권을 이전해 농민협동조합이 임대 형식으로 쓸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브라질, 인도산 농기계와 비교해 한국 농기계가 경쟁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현지에서 인지도를 높여 향후 농기계 기업의 진출을 돕겠다는 취지다.
수출길이 열렸지만 먼저 해결할 과제가 있다.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 우리 농기계가 수출되고 있는데, 현지 관세정책으로 통관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가나와 당초 무관세로 협약을 맺었지만, 세관 행정 처리가 지연되면서 매일 보관료가 쌓이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4월 26일부터 물품 보관료를 하루 240달러로, 직전에 비해 2.4배나 올려 우리 정부와 기업의 부담이 커졌다.
최근 김 소장의 속을 새카맣게 태운 것도 '통관' 문제였다. 한국에서 어렵게 공수한 농기계가 통관 절차로 인해 나오지 못한 채 가나 세관 창고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는데, 등록비 67만 원, 터미널 비용 50만 원, 통관대행수수료 45만 원, 기타비용 15만 원에 더해 매일 보관료(240달러)까지 내야 했기 때문이다.
"정말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면세로 협약을 했는데 세관에 농기계가 붙잡혀서 안 나온대요. 보관료만 몇천만 원을 냈어요. 맨날 세관에 전화하다가 질려버려서... 이제 안 해요 안 해." 아프리카에서 '농업의 아버지'라 불리는 김 소장도 고개를 저었다.
행정 처리에 최대 6개월(보관료 6,000만 원)이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보관료가 관세 부담 비용을 초과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무관세 협약 조항의 실효성이 없어지는 셈이다. 박태선 한국농어촌공사 이사는 "가나 식품농업부에서 요청하면 재무부, 국회 비준 등을 거쳐야 해 면세 처리까지 시간이 소요된다"며 "통관 관련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문 인력을 현지에 파견해 아프리카 상대국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벼 종자부터 생산 기반, 유통 체계까지 쌀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한국의 노하우를 아프리카에 전수하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이다. 쌀을 원조하는 개념이 아니라, 아프리카 국가 스스로 2027년까지 다수확 벼 종자 1만 톤을 생산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연간 3,000만 명에게 안정적으로 쌀을 공급하는 게 목표다. 지난해 착수한 후 올해부터 본격 추진하고 있다. 현재 서아프리카(4곳), 중앙아프리카(1곳), 동아프리카(2곳) 등 총 7개 나라가 참여하고 있으며, 3개 나라가 추가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상태다.
글 싣는 순서
<상> 생명의 쌀띠, K라이스벨트
<하> 벼만 심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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