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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텔은 그새 깨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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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연구나 과학계 이슈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일들을 과학의 눈으로 분석하는 칼럼 ‘사이언스 톡’이 3주에 한 번씩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다짜고짜 가져간다 했을 땐 말려도 막무가내더니, 이제와 도로 주겠다며 선심 쓰듯 한다. 당최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지, 맞춰도 되는 장단이긴 한지 헷갈릴 노릇이다. 올해 연구개발(R&D) 예산을 기어이 깎아놓은 정부가 앞으로는 절차까지 줄여가며 더 주겠다고 하니 황당해서 하는 말이다. 어쨌든 내년에는 그나마 연구에 숨통이 좀 트일 듯한데, 떨어질 대로 떨어진 과학자들 사기는 올라올 기미가 안 보인다.
R&D 예산 삭감을 두고 작년에 그 사달이 났던 건 카르텔 영향이 컸다. 대통령이 나서서 국가 연구비 갈라먹기 같은 비효율 관행의 주범으로 과학기술계 이권 카르텔을 지목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카르텔이 누구며 어디 있는지 몇 번이고 물어도 속 시원히 대답 않던 정부는 R&D 예산을 가차 없이 싹둑 잘라냈다. 그렇게 과학자들은 하루아침에 카르텔 ‘누명’을 뒤집어썼다.
연구한다고 다 같은 연구자가 아니다. 대통령이 지적한 것처럼 국가 예산을 눈먼 돈 쓰듯 갈라 먹은 소수의 연구자도 있지만, 그런 카르텔에 끼기는커녕 생계 유지하기도 버거운 약자들이 부지기수다. 예산 삭감의 칼바람은 먼저 약자들에게 닥쳤다. 미래를 건 연구가 길을 잃고, 일자리 계약이 종료되고, 학위의 꿈이 멀어졌다. 카르텔에 가까울 법한 과학계 최상위층 인사들의 수입은 공고하지만, 통장에 찍히는 숫자의 십만 자리, 만 자리에 전전긍긍하는 약자들의 생활비는 직격탄을 맞았다.
뒤늦게 상황의 심각성을 눈치챈 정부가 내년 R&D 예산 복원을 누차 약속했다. 그 정도로 안 되겠다 싶었는지 ‘당근’을 더 내놨다. R&D 예비타당성조사를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현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정책이건만 예산 삭감만큼이나 갑작스러웠다. 정부는 과학계가 원했던 당근이라 했지만, 연구자들은 제도를 개선하라 요구했지 싹 다 없애라는 게 아니었다며 당혹스러워했다.
예타는 R&D 예산이 제대로 된 연구에 효율적으로 쓰이도록 거르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이게 없으면 어떤 연구나 국가 재정을 타 쓸 길이 열릴 수 있는 만큼 목소리 큰 사람, 먼저 신청한 사람, 그럴듯한 연구로 포장을 잘한 사람이 유리해질 거란 우려가 크다. 규모가 크든 작든 한정된 예산을 놓고 연구자들끼리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 새로운 카르텔도 생겨날지 모른다. 비효율의 주범으로 지목했던 그 카르텔들은 그새 다 뿌리 뽑은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연구 현장에선 “의사는 두렵고 과학자는 만만하냐”는 자괴감이 공공연하다. 정부와 날을 세우며 병원을 비운 의사들과 달리, 과학자들은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실험실을 지켰다. 그런데 돌아온 건 함께 일하던 연구원과 학생을 내보내야 하는 안타까움, 벗은 건지 못 벗은 건지 여태 애매한 카르텔 누명이라는 것이다.
한 누리꾼은 “문송 이어 자송, 공송이냐”라고 했다. 문과라서 죄송한 데 이어 자연대, 공대라 죄송해야 하냐는 한탄일 터다. 또 다른 누리꾼은 “정부는 이공계를 낙수공대로 생각한다”고 했다. 의사가 떠난 병원에는 지원을 쏟아붓고 의사가 반대하는 제도는 머뭇거리면서, 공대는 의대 못 간 애들이 모인 곳이라 연구비 깎고 제도도 마음대로 바꾸냐는 비판이다.
예타 폐지 기사에도 댓글이 많다. ‘심사 제대로 해서 예산 잘 주면 되는 걸 다 박살 내놓고 선심 쓰듯 한다.’ ‘예타가 효율성 높이려고 하던 거 아닌가. 예산은 늘리고 예타는 개선해야지, 예산은 줄이고 예타를 없애면 어쩌자는 건지.’ ‘예타는 건전 재정의 필수 단계인데 왜 폐지하나.’ 국민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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