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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별'이라고 무시하지 마라...여기도 사람과 사랑이 있다

입력
2024.05.31 11:00
11면

김소희 그래픽노블 ‘먼지 행성’

편집자주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는 만화가 일상인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가락 사이로 책장을 끼워가며 읽는 만화책만의 매력을 잃을 수 없지요. 웹툰 '술꾼도시처녀들', 오리지널 출판만화 '거짓말들'의 만화가 미깡이 한국일보를 통해 감동과 위로를 전하는 만화책을 소개합니다.

무인 매장에서 널리 이용되는 키오스크. 게티이미지뱅크

무인 매장에서 널리 이용되는 키오스크. 게티이미지뱅크

오랜만에 식료품 가게에 갔는데, 늘 웃으며 맞아주던 직원이 안 보이고 그 자리에 키오스크 몇 대가 놓여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키오스크로 인건비를 줄여보세요♪”라고 적힌 광고 문구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인건비라는 말 뒤에 사람이 있는데 저렇게 즐거워도 되나. 그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될까.

여기는 미래의 어느 행성. 정식 명칭은 ‘먼지 행성’이지만 사람들은 이곳을 ‘쓰레기 별’이라 부른다.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이 자기들 행성을 깨끗하게 유지하려 쓰레기를 갖다 버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춥고 어두워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황량한 땅이지만 여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나오’와 ‘츄리’, ‘리나’, 그리고 구형 고양이 펫봇 ‘깜이’는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쓰레기 캡슐을 뒤져서 쓸만한 걸 되팔아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먼지 행성·김소희 지음·아름드리미디어 발행·160쪽·1만6,000원

먼지 행성·김소희 지음·아름드리미디어 발행·160쪽·1만6,000원

한 집에서 가족처럼 함께 사는 넷은 먼지 행성에서 만난 사이다. 나오는 원인 불명의 사고로 딸을 잃은 후 스스로를 이곳에 유배시켰다. 츄리는 시민 등록이 안 돼 이리저리 떠돌며 살다가 마지막으로 이곳에 정착했다. 10여 년 전 쓰레기와 함께 버려진 리나는 나오와 츄리 두 사람이 구조해 자신들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딴 이름을 지어주었다. 전원이 켜진 채 버려진 고양이 로봇 깜이는 리나가 구했다. 버려진 리나가 버려진 깜이를 구한 것이다. 죽고 못 사는 친구가 된 리나와 깜이는 어두운 기억이 찾아올 때면 서로를 꼭 끌어안고, 먼 곳의 불빛을 향해 비밀스러운 모험을 떠나기도 한다.

쓰레기를 헤집는 일은 고되지만, 저녁에 모여 앉아 컵라면을 나눠 먹을 수 있으면 이들 네 사람은 충분히 행복하다. 하지만 소박한 일상을 위협하는 소식이 들려온다.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쓰레기 처리 빔이 개발됐다는 것. 그렇게 되면 쓰레기 별은 폐쇄될 수도 있다. 다른 행성에서 과연 그들을 받아줄까. 아니, 그들이 여기 있다는 것을 기억이나 할까.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가운데 엄청난 폭설이 내리고 행성이 꽁꽁 얼어붙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건 눈 때문일까. 정전, 고장, 그게 아니라면…

전작 '반달', '자리'를 통해 자전적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냈던 김소희 작가의 새 그래픽노블 '먼지 행성'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당면한 사회 문제들을 또렷하게 담아내고 있다. 진실을 알기 원하는 참사 유족, 미등록 체류자, 보호를 받는 대신 버림을 받는 사회적 약자들, 점점 소외되는 노동의 문제까지, 밀려나고 잊혀 가는 존재들의 이야기다. 슬프고 절망적인 현실을 그리고 있지만 이 비혈연 가족이 보여주는 위대한 사랑과 연대는 이 이야기를 절망으로만 끝내지 않는다. 어떤 시대, 어떤 곳에서도 정답은 오직 사랑뿐이다.

미깡(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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