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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사법방해죄

입력
2024.05.29 16: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음주 뺑소니 혐의를 받는 트로트 가수 김호중이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음주 뺑소니 혐의를 받는 트로트 가수 김호중이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조선 태종 때 설치된 신문고(申聞鼓)는 애민정치의 상징으로 통한다. 그러나 500년 넘는 조선왕조에서 왕성하게 가동된 기간은 길지 않다.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면 신문고를 다시 설치하라는 기록만 두 번 나온다. 성종과 영조 때다. 신문고가 첫 설치된 태종부터 성종 기간, 성종과 영조 기간 일부에는 신문고가 기능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민의 상달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역기능은 참소와 무고였을 것이다. 세종실록에 그런 대목이 나온다. "사헌부에서 아뢰었다. '근래에 정치의 잘잘못과 민생의 편안과 근심은 말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 일만 호소하며, 또 원통하고 억울한 일이 아니면서 무고하는 자와, 함부로 관청에 고하는 자…모두 그대로 두고 죄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나쁜 무리들이 조금만 마음에 불평이 있으면 관리를 대면하여 '내가 마땅히 신문고를 치겠다'고 욕지거리를 하고, 흔히 웃어른과 다투어 이기지 못하면 '내가 마땅히 신문고를 치겠다'고 문득 대듭니다..."(세종실록 15년 1월 16일)

□요즘 풍경도 비슷하다. 먼저 큰 소리를 내어 다툼에서 주도권을 잡으면 진실과 다른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아진 때문일까. 다수의 억울한 피해자가 생긴다. 경찰청에 따르면 연간 무고범죄 발생 건수가 2016년 3,617건에서 2019년 4,159건, 2022년에는 4,976건으로 늘었다(※2023년 통계는 올 하반기에 나올 예정이다). 7년 새 38% 불어난 것이다. 최근 이목을 집중시킨 한 유명가수의 음주사고 후 뺑소니 사건처럼 수사기관에 거짓말하는 경우도 빈발한다.

□약자의 억울함도 풀어야 하지만, 무고범죄 피해도 막아야 한다. 아울러 공권력을 깔보고 위증하는 풍조도 없애야 한다. 법에 의한 지배를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법조계에선 사법방해죄 도입을 주장한다. 21대 국회에서도 관련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계류됐으나 처리되지 못했다. 사법방해죄는 서민의 억울한 피해도 막겠지만, 야당 유력 정치인의 불성실한 재판 참여와 대통령실 민정수석의 일탈 가능성을 제어하는 역할도 할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선명성을 보여주려면 연금개혁 못지않게 사법방해죄 도입을 서둘러 보는 게 좋겠다.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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