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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특별법 반대한 정부... 정작 피해자 단체와 협의 '0'

입력
2024.05.28 18:3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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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국회 통과
정부 "현실성 없다" 거부권 행사 예고
피해자단체들 "우리와 협의 전혀 안 해"
"개정 전날 갑자기 정부안 발표 유감"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국회 통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민호 기자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국회 통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민호 기자

‘선(先) 구제, 후(後) 회수’가 골자인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야당 주도로 28일 국회를 통과했다. 국토교통부는 개정안이 기술적으로 실현하기 어렵다며 즉각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제안한다는 입장이지만 정부 책임론도 만만찮다. 정부가 전날에야 대안(정부안)을 내놓으면서도 피해자 단체와 전혀 협의하지 않은 탓이다. 정부안이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위한 ‘명분 쌓기’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으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는 공공이 피해자의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피해자를 ‘선 구제’하고 나중에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거나 주택을 경매에 부치는 등 비용을 ‘후 회수’하는 내용이 담겼다.

일각에서는 개정안이 졸속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의 가치를 법대로 ‘공정하게 평가’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조문에 규정된 공공이 피해자에게 지급할 금액이 불명확한 문제 등 법리도 허술한 부분이 있다. 국토부는 관계 기관들과 지난달부터 세 차례나 토론회를 열어 이런 문제들을 지적했고 27일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세사기 주택을 사들여 감정가와 경매가의 차액만큼을 피해자에게 지급하도록 한 정부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안은 피해자 단체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정부안 수립 과정에 피해자 단체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철빈 전세사기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피해자 대책위가 정부와 여당에 면담 요청만 수십 차례 했는데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며 “그럼에도 특별법 개정안 표결 전날 일방적으로 대책을 발표한 정부에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피해자 단체 사이에서는 정부안대로 LH가 주택을 감정평가해 매입한다면 개정안대로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 말대로 추가로 입법이 필요하다면 개정안을 보완할 일이지 폐기할 이유는 아니라는 것이다.

정태운 대구 전세사기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정부안이나 개정안이나 공공이 피해자에게 돈을 주는 것은 비슷한데 정부안을 이렇게 늦게 발표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며 "대통령이 거부권을 쓰기 위한 발판을 만들어 준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다만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등 개정안을 지지하는 일부 단체는 정부안과 개정안이 양립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피해자 상황이 제각각인 만큼 해법이 다양할수록 좋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가 시뮬레이션(실험)한 결과, 정부안과 개정안 가운데 어느 한쪽이 피해자에게 더 유리하다고 평가하기 어려웠다. 공공이 두 법안에 따라 지급할 금액은 피해자마다 달랐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정부안의 자세한 내용을 사전에 공개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달 초 피해자 단체와 접촉해 대안 발표 계획과 대략적인 방향을 설명했다"며 "(정부안이 발표됐으니) 조만간 피해자 대책위원회랑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이날 “개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법률안에 대한 재의요구안(거부권)’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야당이 다음 국회에서 개정안을 재발의한다면) 정부안과 야당안(개정안)을 충분히 논의해 누가, 어떤 돈으로, 어떻게 보상하는지 국민이 소상히 알아야 한다"며 "다른 의견도 수렴해 가며 피해자를 구제하는 프로세스(과정)를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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