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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과 재생에너지, 적으로 두지 말라" 프랑스·스웨덴서 찾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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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소멸과 기후변화 등으로 구조적 위기가 닥쳐오고 있지만 5년 단임 정부는 갈수록 단기 성과에 치중해 장기 과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정권교체마다 전 정부를 부정하는 정치적 갈등으로 정책적 혼선도 가중됩니다. 한국일보는 창간 70주년을 맞아 이런 문제를 진단하면서 구조 개혁을 이루기 위한 초당적 장기 전략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1. 지난달 28일 오후 프랑스 북동부 소도시 브루마스의 라즈베리 밭. 초여름 한낮의 뙤약볕에도 수십 명이 몰려들었다. 재생에너지 회사인 '바이바 레'가 올해 3월 시범 운영을 시작한 '태양광 농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약 4,900㎡ 규모의 농장에는 비닐 차양막 대신 반투명 태양광 패널이 달렸다. 여기서 생산되는 전력은 농사에 활용된다. 총생산량은 연 464메가와트시(MWh)다. 패널이 차양막을 대신하는 효과도 있다. 바이바 레의 토마스 돔빌데스 지역발전 매니저는 자신 있게 말했다. "태양광 농업 혁명이 여기서 시작될 것 같아요!"
#2. 같은 날 프랑스 또 다른 도시 오콩쿠르에서는 재생에너지 관련 기업 '토탈에너지' 관계자들이 시민들에게 지난해 연말부터 가동된 태양광 발전소를 소개하느라 한창이었다. "약 2만 개의 패널을 통해 약 17기가와트시(GWh)의 전력이 생산됩니다", "주민 8,000명에게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어요" 등 안내가 2시간가량 이어졌다. 직원 히폴리테 볼루는 "재생에너지 산업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프랑스는 자타공인 친(親)원자력발전 국가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프랑스 전력 생산 중 원자력 비중은 약 68%. 세계 최고 수준이다. 1차 에너지원 총공급 비율로 봐도 원자력은 40%를 차지한다.
그러나 프랑스는 재생에너지에도 '진심'이다. 이날 프랑스 시민들과 함께 브루마스·오콩쿠르 태양광 시설을 둘러볼 수 있었던 것 역시 프랑스 공공기관 환경에너지관리청(ADEME)의 '전적인 지원' 덕분이었다. ADEME는 재생에너지 홍보 및 투자 독려 등을 위해 프랑스 북동부 행정구역인 그랑이스트와 협력해 역내 재생에너지 시설 개방 행사를 정례적으로 열고 있다.
'에너지 안보'와 '기후 위기'. 인류 앞에 놓인 두 가지 과제 앞에서 특정 에너지에 대한 과도한 쏠림은 위험하다. 한국일보가 원전 강국이면서 재생에너지도 강조하는 프랑스 취재에 나선 이유다. 한국일보는 균형적 시각을 위해 프랑스 리옹에 위치한 프랑스전력공사(EDF)의 원자력 연구소도 취재했다. 같은 맥락에서 스웨덴 에너지 정책도 살펴봤다. 스웨덴은 재생에너지에 중점을 두면서 원전 활용에 속도 조절을 해왔다. 기사 작성을 위해 EU 집행위원회 및 프랑스·스웨덴 에너지 전문가 5명도 인터뷰했다.
유럽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는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원전 건설을 본격화했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1986년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 사고,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이 터졌음에도 비교적 꾸준히 원전을 개발·유지해 온 까닭에 프랑스는 현재 18개 부지에서 원자로 56기를 운영하는 원전 강국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원전에서 생산되는 에너지 용량은 연간 총 63기가와트(GW·1GW급 발전설비는 이용률 100% 기준 250만 가구가 매일 사용할 전력 생산)에 달한다. 원전에 대한 여론도 우호적인 편이라 정책 수용성도 높다. 이에 프랑스는 향후 6~8개의 원자로를 추가로 짓는다는 계획도 세워뒀다.
수도 파리 다음으로 원전 연구·개발 중심지로 꼽히는 리옹에 마련된 '쇼룸'은 원전에 대한 프랑스의 의욕을 가장 집약적으로 볼 수 있는 공간이다. EDF의 원전 연구소 1층에 대형 쇼룸을 설치한 건 원전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관심을 높이는 동시에 원전 산업으로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지난달 27일 쇼룸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러시아로부터 유럽의 에너지 독립'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원전 중요성도 더 커졌다"며 "앞으로 원전 산업은 더 발전할 것이고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해 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쇼룸에서는 원전 기술, 가동 원리, 운영 현황 등 정보를 세세하게 접할 수 있었다.
프랑스는 동시에 재생에너지 확대 의지도 강하다. 프랑스 에너지 정책 실행 근간이 되는 2019~2028년 다년도에너지계획(PPE)을 보면 프랑스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목표 달성을 위해 '전체 에너지 공급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2021년 13%에서 2030년 33%까지 올리겠다'는 세부 계획을 세웠다. 전력 생산량 기준 23%에서 40%까지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22년 2월 '2050년까지 △태양광 10배 확대 △해상풍력 발전단지 50개 건설' 같은 야심 찬 계획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프랑스의 전략은 현실적 판단에서 기인한다. 원전 불확실성을 고려해 '위험 분산'을 한 것이다. 프랑스는 현재 운영 중인 원전 수명을 25~35년에서 60년 이상으로 늘려 쓰겠다는 계획인데, 이 계획이 프랑스원자력안전청(ASN) 등의 검증을 통과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신규 원전을 짓겠다는 계획은 각종 허가, 비용 등 문제로 늘어질 가능성이 크다. EDF 한 직원은 익명을 전제로 "원전을 주 에너지원으로 두되 재생에너지를 원전 못지않게 끌어올려 서로 보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프랑스 구상"이라고 말했다. 리옹 쇼룸 방문 시 확인한 원전 안내 영상이 원전뿐만 아니라 수력·풍력·태양열 발전 보완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프랑스 정부의 에너지 정책 구상을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이러한 위험 분산은 탈탄소 계획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프랑스 싱크탱크 '자크 들로르 에너지 센터'의 카미유 드파르 센터장은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가려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더 많은 전력 생산이 담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가 에너지 정책 균형추를 맞추는 것은 EU 덕분이기도 하다. EU가 설정한 목표와 기준을 27개 회원국이 '국가 에너지 및 기후 계획(PNEC)'을 통해 개별국 목표와 기준으로 구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또 다른 싱크탱크 '네가와트'의 이브 마리냑 대변인은 "에너지 믹스 최종 결정권은 국가에 있기 때문에 EU 역할은 제한적"이라면서도 "EU는 일정 수준의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도록 강제·권고·독려하는 강력한 기구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친재생에너지 성향이 강한 현 EU 지도부 결정을 프랑스가 곧이곧대로 수용하지 않는 점은 EU 견제 역할의 방증이기도 하다. EU가 지난해 법적 구속력 있는 계획으로 채택한 '리파워EU(REPowerEU)'에 따라 EU 회원국은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30%' 목표를 42.5%로 높여야 하지만 프랑스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의 기후 행동 및 에너지 대변인 팀 맥피는 구체적 언급은 삼간 채 "EU 회원국은 2021~2030년 PNEC를 개정해 6월 중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EU도 "재생에너지는 2050년까지 EU 전력 생산 중추가 될 것이고, 원자력에너지로 보완될 것"(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라며 원전의 중요성도 인정한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오일쇼크를 겪으며 원전을 키운 스웨덴의 경우 약간 차이는 있다. 스웨덴은 원전 사고를 거치며 재생에너지에 집중하자는 목소리에 더 힘이 실렸다. 박상철 한국산업기술대 지식기반기술에너지대학원 교수는 2021년 한국EU학회 논문에서 '1990년대 이후 스웨덴 에너지 정책은 에너지 효율 향상, 재생에너지 발전, 시장경쟁력 확보를 토대로 한다'는 취지로 분석했다.
그러나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한 원전 지지도 상당해 에너지 정책을 둘러싼 갈등도 꾸준히 이어졌다. 현재도 스웨덴에서는 중도우파 성향의 온건당을 주도로 하는 연립정부가 탈원전 정책 폐기 주장과 함께 '2024년까지 원전 10기 건설' 등을 추진하면서 야당과 충돌하고 있다.
한국과 비슷한 모습인 듯하나 그럼에도 스웨덴 사례에는 시사점이 있다. 자기 진영의 에너지 정책에서 효율성, 시장성 등의 오류가 발견될 경우 상대 진영 정책을 수용하는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 균형도 자연스럽게 맞춰졌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2년 스웨덴 전력 생산량은 수력 40.6%, 원자력 30.0%, 풍력 19.1% 등으로 할당돼 있다. 두 에너지를 '적'으로 두지 않는 태도는 '탄소배출량 감축'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주지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2016년 6월 스웨덴 5개 정당이 합의한 에너지 정책은 대표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2014년 사회민주당·녹색당을 주축으로 집권한 진보 연정은 원전 축소를 강력하게 추진했는데, 이 과정에서 연간 전력 생산이 12%나 떨어진다는 추산이 나오자 연정은 야당과의 협의를 통해 에너지 정책을 다시 짰다. 새 합의는 '2040년까지 전력 생산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기본 틀을 유지하되, '정치적 결정에 따라 원전을 폐지하지 않는다', '원전 투자는 지속적으로 단행된다' 등 정치적 약속도 담고 있다. 1990년 의회가 '2010년 원전 가동 중지'를 결정했다가 이 정책으로는 에너지 수요를 충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자 철회한 것도 비슷한 사례다.
이와 관련 스웨덴 싱크탱크인 스톡홀름환경연구소의 벼른 닉비스트 선임연구원은 "스웨덴은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대신, 세 번째 선택지를 개발해 왔다"며 "절대적으로 옳은 에너지 전략은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상황에 맞는 전략을 찾아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스웨덴 차머스공대 필립 존슨 교수는 "지방자치단체의 에너지 정책 결정 권한이 어느 정도 강하다는 점도 균형적인 에너지 비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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