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과 소통 불씨는 살렸지만...'北 비핵화' 등 민감 안보 합의는 담지 못해

입력
2024.05.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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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정상회의, 정례화 합의
안보 현안 합의 이루지 못해
경제·민생 분야 우선 협력 합의

2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리창 중국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다. 서재훈 기자

2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리창 중국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다. 서재훈 기자

4년 5개월 만에 한자리에 모인 한중일 정상의 선택은 '구동존이(求同存異)'였다. 북핵과 대만해협 문제 등 민감한 안보 현안은 뒤로하고 우선은 상호 이익과 정세 안정을 위한 3국 최고위급 소통채널 복원과 가동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이를 통해 역내 안보와 관련한 공동성명 문구는 지난 정상회담에 후퇴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3국 정상회의를 정례화하고 경제·통상 등에서의 3국 협력 등의 성과는 손에 쥘 수 있었다.

표면으로 드러난 한중일 안보 '동상이몽'

정상회의 직후 3국 정상이 내놓은 공동선언문은, 특히 안보 현안에 있어 지난 2019년 8차 공동선언문에 비해 한 단계 후퇴했다는 평가다. 당시 선언문에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동북아 평화와 안정 △일본 납북자 문제 등에 대한 지지표명을 각각 했지만, 이번엔 세 가지 주제를 한 문장으로 묶어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는 데에 그쳤다.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 합의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각국의 입장을 따로 병기한 것이다. 또, '한반도의 비핵화'에서 '완전한'이란 표현도 빠졌다.

물론 이에 대해 외교부 측은 "지정학적 환경변화 속에서 중국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재확인했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입장이다. 중국이 공동선언문 조율 과정에서 '북한의 비핵화'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표현을 쓰는 데 반대했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은 2023년 4월 이후 양자회담 및 정례브리핑 등 외교현장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표현 자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후 "공식 외교문서상에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문구가 들어가는 걸 동의한 것 자체가 처음"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이날 오전 예고한 군사정찰위성과 관련한 문구도 공동선언문에 담기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이날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규탄의 목소리를 낸 것과 달리 리창 중국 총리는 "사태가 더 악화하고 복잡해지는 걸 예방해야 한다"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북한을 감싸고돈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 위성과 관련한 사안은) 공동선언문에 넣는 것보다 우리 입장을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것이 더 맞지 않나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근거로, 3국 정상회의에서 향후 정치·안보와 관련한 협의가 점점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본다. 문흥호 한양대 교수는 "한중일 3국 외교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라며 "정상회의를 복원했다는 데 의미가 있지만, 앞으로의 협상은 보다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3국 협력 분야 내실화·제도화 노력...외교공관 확보

3국 정상은 대신 경제·민생협력 강화에 보다 방점을 뒀다. 3국 정상 간 소통을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례화하기 위한 '실마리'들을 만들기 위해서다. 또 다른 외교부 당국자는 "기본적으로 3국 협력은 정치·외교적인 무거운 의제보다는 금융 및 경제 차원에서 내실 있는 협력을 해나가는 데에 초점을 둬왔다"며 "민생·경제 분야 협력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데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외교공간 확보' 차원의 성과로 이를 받아들인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지정학적 환경이 어려워진 상황 속에서 '일단 얼굴 맞대고 대화하자'는 공감대를 이뤘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외교공간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있다"며 "정상회의를 계기로 각 채널에서의 소통이 활발해지면 향후 갈등이 생기더라도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많아진다"고 평가했다.

물론 불씨도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경제협력 분야의 경우 리 총리가 "무역 보호주의와 디커플링에 반대해야 한다"고 강조한 대목을 꼽을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 참여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등 미국 주도 공급망 협의체에 견제구를 던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점에서도 3국간 이견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왕휘 아주대 교수는 "향후 실무협의가 내실 있게 진행되는지가 관건"이라며 "특히 수출통제 문제에 있어 구체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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